다시 줍는 시 8. 그의 비명과 나의 비명 사이에서

생각하다여성 예술가

다시 줍는 시 8. 그의 비명과 나의 비명 사이에서

신나리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매일 서울의 한 종합 시장 거리를 걸어서 통과한다. 작업실이 시장 근처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낮에 그곳을 걸어서 통과하는 일은 내게 무척 자극적이다. 이번 겨울, 내가 본 것들을 그려보자면. 거리 입구에서 커다란 바구니에 시래기를 잔뜩 담아 팔던 노인 그리고 수북하게 담겨 있던 시래기 위로 끊임없이 내리던 눈송이들. 한 블록마다 서 있던 풀빵 장수들, 놀랍게도 풀빵의 이름은 국화빵, 붕어빵, 은어빵으로 모두 달랐다. 아주 좁고 긴 골목 끝에 앉아 조개와 굴을 까서 팔던 노인 부부, 비가 오는 으슬으슬 추운 날에도 그곳에 하염없이 앉아계시곤 했다. 낮에는 과일 장수로 지내고 밤에는 외제차를 몰고 달린다던 소문의 과일 가게 아저씨. 그리고 두 손 가득 봉지를 들고 빠르게 걷던 동네 사람들.

비위가 약한 사람

나는 비위가 무척 약한 사람이다. 음식의 경우 어패류, 육류, 채소류 가릴 것 없이 날 음식이라면 모두 입에 대지 못 한다. 시장을 걸어 다니는 일은 내게 자극적이고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시장 좌판에 깔린 날 음식들이 나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람들의 거리를 쏘다니는 힘 역시 나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었다. 시장을 걸을 때면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와 가끔 고래고래 악을 지르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나는 언제나처럼 알고 있었다, 먹고 사는 일과 이를 위해 애쓰는 일의 존엄함과 경이로움을. 그러나 아는 동시에 언제나 느꼈다. 우리의 생존을 위한 움직임은 꼭 비명 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을.

시와 소설을 쓰는 임솔아 작가 역시 비위가 약한 사람인 것 같다.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의 시편 <어째서>에는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과 그 삶의 지속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그 적나라함은 경이로운 동시에 징그럽게 그려진다. “이렇게 달콤한데, 중얼거리며/곰팡이 낀 잼을 식빵에 발라 먹던 엄마처럼/이렇게 멀쩡한데, 중얼거리며/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던 엄마처럼/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엄마도 나처럼 주걱을 잡았을 것이다./눈을 뜨자마자 엄마는 매일 주걱부터 찾아야 했을/것이다.//밥맛은 어째서 잊힌 적이 없는지/꽃들의 모가지가 일제히/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지/경이로움은 어째서 징그러운지.”

예민한 사람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들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감각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을 느끼는 능력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나 역시 무척 예민한 사람이다. 나의 예민함은 삶의 전방위로 뻗어 나가 있다. 나는 나와 사람들의 기분, 감정, 태도, 관계 등을 무척 민감하게 느낄 수 있으며 이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이 예민함은 나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무엇인가를 더 느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민한 사람이기에 감각과 감정들에 있는 그대로 노출되고 속수무책으로 자극받는다.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나도 나의 예민함에 어느 정도는 익숙하며 그러한 자극들에 대처해보려 노력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예민함에 유난 떨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예민함을 지키고 동시에 돌보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작가 임솔아의 시편 <아름다움>과 <여분>은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매일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사람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얼마나 더/여분의 목숨이 남아 있을까./차가운 무릎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무릎이 녹아내린다./무릎이 사라져간다.//사라지고 있는데/살 것 같다.//나를 살게 하는 것들과/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사라지고 싶어 안달을 한다. 이곳에서 사라지는 일이 그에게는 구원으로 느껴진다.



알 것만 같은 느낌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에는 삶 자체가 지옥이라는 전언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비명들로 가득하다. 시편들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그를 알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들 그리고 그로 인해 내지른 소리들이, 나의 소리들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최선의 삶』(2015)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품은 주인공 강이가 집을 나와 바깥을 떠돌며 겪었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뒤편에는 평론가 신형철의 평이 있는데, 이가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이것이 소설에 할 만한 칭찬으로 적당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이 서술하고 있는 이 모든 슬프고 아픈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작가를 만나고 싶지 않다.”라고 적었다. 나는 몹시 의아했다, 나 역시 소설의 일들이 모두 실제의 일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해 나는 임솔아 작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집의 마지막 시편인 <빨간>을 같이 읽어보고 싶다. “사슴이라는 말을 들었다./사슴은 태어나면서부터 갈지자로 뛴다/는 말을 들었다. 먹히지 않으려고//여자라는 말을 들었다./먹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시편 <빨간>이 내지르는 소리에는 죽고 싶다는 말과 살고 싶다는 말이 동시에 있다. 그러므로 작품의 소리는 고통으로 인한 비명인 동시에 고통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된다. “목소리는 어디까지 퍼져나가 어떻게 해야 사라지/지 않는가” 작품의 소리는 고통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그 생각들 사이를 처절하게 헤매인다. “살인자에게서도 기도를 빼앗을 수는 없다는 나의/한 줄 일기와//당신들이 자살하게 해달라는 나의 기도 사이를 헤/맬 것이다.”

약속

사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사는 일 가운데 어떤 일들은 끔찍하게 고통스럽다. “당신들은 발가벗은 채 발목을 잡히고/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매를 맞고/처음으로 울어야만 한다.//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말해지는 동안/믿어본 적 없는 소원이 이루어진다.//고통을 축하합니다./빨간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른다.” 시편 <빨간>을 함께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 작품이 우리 함께 살아가는 지옥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는 동시에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편 <빨간>은 고통을 말하고 쓰는 일을 통해 고통에 대해 ‘함께’ 문제 제기하고 고통에 대해 ‘함께’ 사유하는 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은 고통에 홀로 몰입하는 일로부터 고통으로부터 함께 벗어나는 상상에까지 다가간다.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은 가장 앞에 실린 시인의 말과 가장 뒤에 실린 시인의 약속으로 완성되는 책이다. 이 책에 담긴 고통을 말하는 소리는, 작가가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 소리임과 동시에 작가가 타인의 고통을 말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소리들로 만나고 이 소리들로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열쇠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열쇠를 가지고 함께 어떤 약속을 할 수 있다. 이가 바로, 아주 먼 길이어도, 내가 임솔아 작가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이유다.

시인의 말

언니가 열쇠라는 것만 알았지.

방 열쇠를 나눠 가지면 된다는 걸 나는 몰랐어.

내 방에선 끔찍한 다툼들이 얽혀

겨우겨우 박자를 만들어내.

언니는 말했지.

이런 세계는 풀 수 없는 암호 같고,

그런 건 낙서만큼의 가치도 없다고.

그건 얼마나 옳은 생각인지.

언니와 나 사이에 사는 사람들과

열쇠를 나누어 가지면 좋을 텐데.

2017년 3월

솔아가


시인의 약속

“젠더, 나이, 신체, 지위, 국적, 인종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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