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일기: 1. 나는 전업주부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나는 전업주부다. 

얼마 전 보험 가입을 위해 통화를 하던 중 설계사가 “전업주부시고요.”라고 얘기해줘서 새삼 깨달았다. 회사원에서 전업주부가 된 지는 이제 1년 반 정도 됐다. 퇴사를 한 후 나는 당분간 살림을 하며 앞으로의 삶을 도모하고자 했었다. 다시 일을 할지,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싶었다. 나는 ‘시한부’ 전업주부였고 그렇게 ‘집’은 나의 두번 째 직장이 되었다.

나는 나의 두 번째 직장을 매우 좋아했다.

나는 집을 좋아하는 사람, 말하자면 프로 집순이였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대며 몇 시쯤 어느 방에 해가 가장 잘 드는지를 알아두고 느지막이 일어나 산책을 하고 동네의 떡꼬치를 섭렵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잠을 자고 사람들을 초대해 맛있는 걸 먹고 마시고 남편과 TV를 보며 수다를 떨고 책을 읽고 목욕을 하고 음악을 듣는 공간이 잘 정돈되어 있어야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게다가 지금의 집은 남편과 타일 하나까지 꼼꼼히 고른 신혼집이었다. 애정은 남달랐고 이 집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오늘 몇 시에 퇴근할지도 알기 힘든 생활 속에서 가지런한 일상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집이 포근하고 편안한 건 원래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기 위해 쏟아 부은 시간과 노동력의 결과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전업주부가 되자 바로 그런 일들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하게 아침을 해먹고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기를 한 번 밀어주고 브러쉬를 바꿔 TV장, 테이블 위의 먼지를 쓸어내고 물걸레 청소를 한다. 그런 다음 베개, 이불, 스프레드, 매트리스를 침구용 브러쉬로 먼지를 제거한 후 베란다에 널어 햇볕 샤워를 시킨다. 바닥 청소를 하는 동안 세탁기를 돌리면 시간이 딱 맞는다. 빨래를 널고 나면 세탁기의 먼지 필터를 꺼내 물로 깨끗이 씻어주고 세제 서랍을 꺼내어 닦은 후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 한 귀퉁이에 세워둔다. 가습기와 에어워셔 물통을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헹군다. 소파와 패브릭 의자에는 린넨워터를 뿌려 얼룩과 냄새를 없애주고 좋아하는 무화과 향의 패브릭 스프레이를 뿌려둔다. 오전에 널어둔 침구는 탁탁 털어 개켜둔다. 버터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사각형으로 잘라 종이호일에 싸서 밀폐용기에 넣어둔다. 마트에서 사온 파는 손질을 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한 줌 씩 덜어 키친타올에 감아 비닐팩에 포장한다.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욕실, 베란다 청소를 하고 조명등에 쌓인 먼지를 걷어낸다. 다시마, 멸치, 건새우, 무, 파 등을 넣고 육수를 낸다. 커트러리들을 끓는물에 삶고 헝겊으로 얼룩을 닦아낸다. 주물팬과 냄비에 오일링을 한다. 매월 1일에는 칫솔과 샤워볼을 새 것으로 갈고 갖은 양념들, 육수, 세제, 목욕용품들이 얼마나 남았나 체크한다.

덕분에 내 삶의 질은 훨씬 높아졌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집에서는 무얼 하든 더욱 좋았다. 살림을 하면서 점점 나만의 매뉴얼이 생겼고 거기에 익숙해지다보니 단정하면서도 여유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트위터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살림팁을 저장해 두었다가 시간 날 때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감각, 내가 나의 일상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좋았다.

그렇게 전업주부 1년 차, 나는 아이를 낳았고 계획에 없던 겸직을 하게 되었다. 전업주부이자 주양육자로.

별개의 두 가지 노동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보통은 이게 같은 일이거나 혹은 육아노동이 가사노동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일이다. 게다가 육아노동은 가사노동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어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와 집에 머물면서 내가 두 가지 일을 모두 해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육아노동에 전념하는 쪽을 택했다. 

같은 노동을 해야한다면 아이와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깨끗한 침대에 누워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여있지 않은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고 싶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전에는 가사 노동에 할애했던 퇴근 후나 주말 시간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길 원했다. 남편과 나는 상의 끝에 주 2회 가사도우미 분의 도움을 받고 주 1회 반찬을 배달 시키기로 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집은 내가 가사노동만 하던 때와 비슷한 모양새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고 나는 육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육아는 막노동에 가까워서 회사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단했지만 가끔씩 어떤 일도 주지 못했던 행복감을 줬다. 모든 게 꽤 괜찮아 보였다. 몇 가지 사건들이 있기 전까지는.

"부럽다"

선배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내가 ‘전업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몇몇이 정말 궁금하고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그럼 이제 다시 일 안하고 계속 아기만 키울거야?“ “대단하다. 난 진짜 집에서 애랑만 못 있겠던데.” “그럼 이제 네 인생은 어떻게 되는거야?”라고 물었다. 남편의 육아참여도와 가사 도우미분 얘기 끝에는 “너같이 호강하면서 아기 키우라면 나도 낳겠어.” “부럽다.”라는 얘기들도 했다.

글쎄, 그런가. 아기를 키우며 사는 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었다. 너무나 당연해서 꼭 적어야 할지 의문이지만 나는 여전히 나이고 그저 엄마가 되었을 뿐이다. 대단할 것도 어쩔 것도 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고른 최선의 선택지였고 거기에 책임을 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역시 자아도 꿈도 잃어버린 채로 ‘쿠키나 굽는’ 여자로 보였던 걸까. 내가 정말 호강이라는 걸 하나.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로 밥을 먹을 때면 늘 그릇을 하나만 꺼냈다. 밥과 반찬 몇 가지를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커다란 그릇으로. 정바당이 언제 깰 지 몰라 마음이 급해 밥을 거의 주워먹다시피 했다. 내 배 위에서만 낮잠을 자는 아이를 배에 얹은 채로 꼼짝도 하지 못하고 2시간 동안 화장실도 참아가며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자세로 미친듯이 졸면서 생각했다. 내가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이 모든 일은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지만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린 건 양육수당을 신청하다가 어린이집 안내 페이지를 보게 된 날이었다. 2016년 7월부터 시행중이라는 ‘맞춤형 보육’에 대해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었다. ‘맞춤형 보육’이란 만 36개월 이하 영아에 대한 보육 체계를 하루 12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는 '종일반'과 하루 최대 6시간(9시~오후 3시) 이용이 가능한 '맞춤반'으로 이원화한 제도이다. 말하자면 종일반은 맞벌이 부모의 자녀가, 맞춤반은 전업주부의 자녀가 주대상이다. 그야말로 버튼이 눌렸다. 순식간에 3등시민으로 밀려난 기분이었다. 혹시나 내가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본 경험담은 더 절망적이었다. 많은 문제가 있는 행정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건, 맞춤반 아이가 특별한 사정이 있어 어린이집에 더 머물러야 할 때 쓰라고 나눠준 ‘긴급 바우처’였다. 

이 바우처를 쓸 때는 사용 이유를 함께 적어야 하는데 거기에 적혀있는 보기들은 다음과 같았다 : ‘장보기 등 집안일’, ‘아동의 형제 자매 치료’, ‘아동의 형제 자매 학교방문 및 행사참여’, ‘육아 정보교환을 위한 모임 참석’.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국가가 나의 사생활을 왜 알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왜 그마저도 모두 엄마로서의 역할만으로 한정되는건지. 전업주부는 양육과 관련된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때는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사람인건지. 이 ‘긴급 바우처’를 본 후, 정말로 우울해졌다. 내가 아무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해봤자 이 사회에서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엄마’일 뿐이었다.

그러자 무력감이 나를 덮쳐왔다. 

처음에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기분이 가장 끔찍했다. 가사와 육아노동을 분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느때보다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 논의에서조차 여성은 워킹맘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늘상 나오는 ‘같이 돈을 버니까 육아도 함께 하는 게 맞다’는 얘기들은 나를 더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럼 전업주부는 군소리 말고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짊어지고 가끔 도와주는 남편에게 고마워하며 지내는 게 맞는건가. 나는 하루 종일 종종거리고 동동대는데 내가 하는 일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공식적으로는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내가 페미니즘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까지 했다. 고정적인 성역할을 거부한다면서 그 대표격인 전업주부의 역할을 수행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나 자신이 모순되게 느껴졌다. 나는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여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여성의 목소리를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가 록산 게이를 알게 됐다. 자기 싫다고 땡깡을 피우며 앙앙 우는 정바당을 안았다 눕혔다 열다섯 번 쯤 반복하고 자장가를 스무 번 쯤 불러서 겨우 재운 밤이었다. 꼼짝도 할 수가 없어 잠든 아이 옆에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헤매다가 그녀를 보게 된 거다. 이 매력적인 여성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단단하고 솔직한 태도에 나는 단박에 매료됐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문장이 있었다. 괜찮다고. 나는 분홍색을 좋아하고 <보그>를 읽는 걸 좋아한다고. 나는 화려한 결혼식을 좋아하고 블로그에 내가 한 요리를 올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나는 엉망이라고. 나는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고. 하지만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당신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기로 선택한 것을 존중한다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날아드는 펀치라인들에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 영상을 보고 운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나는 전업주부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다. 

이 문장들에 어떤 흠결도 어떤 모순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내가 먼저 이야기 하기로. 이 글은 그렇게 쓰인 글이다.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당신이 주눅들지 않았으면 해서 썼다. 당신이 더 많이, 더 크게 떠들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을 하고 있고 이건 분명 프로의 영역이다. 우리는 충분히 멋지고 훨씬 더 근사한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당신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다. 

2017.04.07 10:00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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