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분노와 위로

생각하다미투

미투: 분노와 위로

나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어쩐지

일주일 전 즈음, 집에 가는 길이었다. 어떤 분이 어린 딸과 손을 붙잡고 전화 통화를 하며 나보다 앞서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통화 내용이 다 들렸다. 그분이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아주 서글프게 흐느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임신 중이었던 것 같았고, 산부인과를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 같았다. 통화내용은 이랬다. 병원에서 뱃속의 아기가 유전자에 문제가 있고 기형으로 출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이미 초음파로 확인해본 결과 아이 목이 비정상 적으로 두껍다고.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그러게 일을 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랐다고. 

가슴이 아팠다. 나는 속으로 남편이란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아내를 나무랄게 아니라 먼저 위로해야 맞는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났다.

그렇게 계속 우는 여성과 철없이 웃고 떠들고 있는 여자 아이를 앞에 두고 걷고 있는데 골목에서 택시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도로도 아닌 곳에서 택시는 여성을 향해 클락션을 울렸다. 비키라고. 어이없지만 어쩐지 익숙했다. 그리고 야속했다.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내가 이 동네에 이사온 이유도 집값이 저렴해서였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위로받길 바랬다. 여러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위로 없이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잠을 자고 있었고, 임종 당시는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간암 판정을 받은 후에 병원에 면회하러 갔다가 심한 우울과 무기력감을 느끼고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두려워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면회를 거의 가지 않았다. 병원에선 새엄마가 계속 아버지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새엄마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병원에 가기 싫었다.

나는 자다가 전화를 받고 바로 장례식장에 갔을 때 친척들의 싸늘한 눈길을 받아야 했다. 큰아버지는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않은 채 멍하게 앉아있는 나를 보고 꾸짖었다. 그 후엔 사촌 언니가 나를 따로 불러다가 아버지 병원에 자주 면회 오지 않았던 것에 대해 나를 나무랐다. 화가 난 나는 사촌언니에게 지금 나에게 그것을 따진다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오시기라도 하냐고 되물었다. 사촌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다음으론 큰어머니가 온 친척들이 다 보는 데에서 나의 상황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지금 일을 하고 있느냐, 어디에 살고 있느냐, 남자친구와 동거중이냐, 등등. 멍한 나는 큰어머니가 묻는 대로 족족 대답했다. 보다 못한 사촌 오빠가 지금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물으시냐고 큰어머니를 말렸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계속 흐느끼며 울었다. 소복을 입는데 아버지의 조카 며느리 되는 언니가 옷 입는 것을 도와주다가 그만 울라고 짜증을 냈다. 남동생은 여자친구와 가출한 상태였고 노숙을 하며 지내느라 돈이 없어서 장례식장에 오지 못했다. 그래서 상주도 하지 못했다. 여자인 나는 상주를 할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사촌 오빠가 상주를 했고 그는 아버지의 유골을 어느 산자락에 뿌리고 왔다. 나는 그 산이 관악산이라는 것만 알고 있고 정확히 어디에 유골을 뿌렸는지는 모른다.

나는 엄마와 장례식장 밖에서 통화를 하며 아버지의 유골을 보관하는 곳도 없고, 아버지를 어딘가에 묻어줄 수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당시 나는 스물 네 살이었다. 그 때, 단 한 명도 나를 위로해주는 이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새엄마는 어차피 너와 네 동생은 데려온 자식이니, 키워준 엄마와 연락도 하지 말고 이대로 인연을 이어나가자고 했다. 나는 그런식으로 출생의 비밀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바로 새엄마와 연락을 끊었다.

운동의 자격

얼마전에 미투 운동과 문학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관해 나의 룸메이트 수정씨가 <JTBC뉴스룸>(아래 <뉴스룸>)에 나가 인터뷰를 했다. 그 후로 <한겨레>와 <MBC> 등 여러 곳에서 비슷한 인터뷰를 했고 온라인에 기사도 많이 났다. 하지만 이 발화에 돌아온 것은, 박진성 시인과 이진우 시인의 폭탄 같은 해명요구와 그가 '미투 운동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왈가왈부, 무수한 악플들이었다. 

그가 우리집에 온 건 작년 여름이었다. 박진성 시인이 트윗에 그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억측글을 올리고, 흥신소를 다녀왔다는 등의 위협을 가하자 두려움을 느껴 우리집으로 오게 된 거였다. 그는 이진우 시인과의 송사로 벌금을 내야 했고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않았다. 그저 짐작으로만 상태를 알고있던 어머니가 보내주신 목돈으로 태국으로 여행을 한 달 간 다녀왔다. 하지만 그 후에 결국 폐쇄병동에 들어가야 했다. 

박진성 시인은 그를 무고죄로 고소한 적이 없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였으며 지난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도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텀블벅을 통해 프로젝트를 열고 <참고문헌 없음>이라는 책을 펴내는데 힘을 보탰다. 그가 자해를 하고 응급실을 드나드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그가 느끼는 고통의 백만분의 일에도 못 닿았겠지만, 함께 아파했다.

원래도 마른 편이었던 그는 점점 나뭇가지처럼 비쩍 말라갔다. 어제 새벽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는 울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찢어졌다. 그를 가만히 안아 등을 쓰다듬다 보니 그의 팔이 보였다. 여섯 줄의 기다란 피투성이 상처가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심한 자해였다. 그는 이미 자신이 곧 입원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캐리어에 짐을 싸놓았다. 우리는 그것을 들고 새벽에 택시를 잡아 바로 응급실로 갔다. 아침까지 계속 그를 지켜보았다. 상처가 심했다. 나는 여러 번 울컥하는 눈물을 참았다.

그를 뒤로 하고 응급실을 떠나면서, 무어라고 표현하기 힘든 허망함을 느꼈다.

이제 정말 말 조심 해야 해

수정씨가 응급실에 가기 전날, 나는 일을 마치고 홍대의 어느 클럽으로 향했다. 나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내가 음악생활을 하는데에 큰 보탬을 준 오빠의 공연이 있어서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공연도 볼 겸 들린 거였다. 클럽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는 나도 잘 아는 뮤지션의 최근 불거진 데이트폭력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클럽 엔지니어는 '아 이제 정말 말 조심 해야 해', 라고 했다. 찝찝한 기분이었다. 당연한 소리를 왜 저렇게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오빠는 '아 몰라, 나는 이런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 라고 했다.

내 룸메이트가 얼마 전에 <뉴스룸>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고 했더니, '아, 그 한 사람 인생 망쳤다던?' 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그 사람이 허위 사실을 계속 유포하고 있고 그것을 사람들이 믿고 있다, 내가 함께 지내며 지켜본 사실이 있다, 고 하자 그것을 네가 어떻게 확신하냐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또, '아 몰라, 나는 이런 것에 관여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라고 했다.

그는 아주 오래 전에 <호모포비아>라는 곡을 만든 적이 있다. 그런 곡을 만들고 후회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아서 놀라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툭하면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발언을 했고 나는 그것이 불편했지만 참아왔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의 바로 옆에 있는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것을. 그리고 알았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겠지. 나는 그에게 더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몹시 화가 나 인사도 하지 않고, 공연을 보지 않은 채 바로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잠들었다. 

그리고 수정씨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그 오빠의 오랜 팬이었다. 그는 공연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았고 그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얘기를 듣고는 보통 사람들이 그렇다며 체념하는 듯 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그는 심한 자해를 했고 응급실에 가게 됐다. 물론 자해가 그의 탓은 아니다. 그건 박진성 시인과 이진우 시인의 지나친 공격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와 인연을 끊기로 마음을 먹었다.

추했다

정말 오랫동안 힘이 되어준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음악을 시작하는 데에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이만큼 와 있는데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는 그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아득하고 희미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그는 남자라는 젠더권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몰라. 난 이런 문제 신경 안 써. 엮이고 싶지 않아.

라고.  그저 사실을 아는 것을 어떤 "문제"에 엮인다고 느끼는 상황 자체가 바로 "문제"인데. 나는 처음으로 그가 추해 보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배려심과 포용력도 없는 사람을 참을 생각도 없다. 우리는 서로를 꾸준히 응원하고 위로하며 단단해질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다. 이기적인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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