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컵을 찾아서: 첫 생리컵을 만나다

알다월경

골든컵을 찾아서: 첫 생리컵을 만나다

김쿠크

몇 달 전, 생리컵을 선물 받았다. 

생리대를 사용하면 외음부가 항상 짓물렀고, 잘 때도 샐까 싶어 편하게 누워 자지 못했고, 밑 빠지는 느낌과 함께 생리통이 심했던 나를 위한 애인의 선물이었다. 사실 탐폰을 잘 사용하고 있었지만 국산 탐폰은 흡수력이 영 좋지 않아 생리대를 같이 착용하는 게 필수였고, 8시간 이상 탐폰을 착용하면 안 되었기에 잘 때만큼은 생리대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애인이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찾아 생리컵을 샀던 거였다. 

애인은 처음 시도해보기엔 가격대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선물로 받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한 번 써 보고 불편하면 쓰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택배로 처음 생리컵을 받았을 때는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귀찮았다. 탐폰이라는 좋은 문명의 이기가 있는데(비록 잘 때는 못 쓰지만) 뭣하러 소독하고, 세척해가며 생리컵을 써야 한단 말인가? 거기다 당장 생리가 시작되지도 않았기에 생리컵이 담긴 택배 박스는 조용히 구석에 처박혔고, 몇 번의 피의 축제를 생리컵 없이 보냈다.

그러다 얼마 전, 내가 왜 생리컵을 쓰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아버린 애인이 자기가 소독해 주겠다 나섰고, 생리가 터지고 이틀째 밤에야 생리컵을 처음으로 개봉했다.

애인이 선물해 준 생리컵은 ‘레나컵’이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생리컵 정보를 찾는데, 메갈리아에 굉장히 잘 정리된 글이 있었다며 그 글을 많이 참고했다더라. 그 중에서도 처음 쓰기 좋으면서 무난하다는 레나컵으로 골랐다고, 작은 사이즈(25ml)와 큰 사이즈(30ml) 두 개 세트로 팔길래 샀다고 했다. 처음 만난 생리컵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작았다. 애인도 포장된 박스를 보면서 ‘여기에 어떻게 생리컵 2개가 들어가 있다는 거지?’ 생각했다고 한다. 무게도 굉장히 가벼워서 잘못 산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는데, 열어보니 작은 핑크색 종모양 장난감 같은 게 두 개 들어 있었다. 

그런데 S 사이즈와 L 사이즈가 5ml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비해 L 사이즈가 상대적으로 커 보여서 당황스러웠다. 생리컵 아래에는 컵을 보관하거나 운반할 때 담을 수 있는 천주머니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꽃무늬, 하나는 땡땡이 무늬. 꽃무늬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땡땡이 무늬가 귀여워서 땡땡이 무늬를 들고 다닐 때 쓰기로 했다.

넣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동봉된 설명서에는 생리컵을 접는 방법과 착용법 등이 적혀 있었다. ‘7 폴드’, ‘펀치 다운’, ‘C 폴드’ 세 가지의 폴드(접는 방법)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고, 질 안에 삽입했을 때 컵의 위치라던가, 자신에게 맞게 손잡이를 잘라서 쓰라는 팁도 있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수입되는 제품이 아닌지라 설명서가 영어였지만, 대부분 그림과 같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역시 이런 건 글보다는 그림이 빠르고 정확하다.

애인이 끓는 물에 생리컵을 소독하는 동안 머리 속으로 생리컵 삽입을 이미지 트레이닝했던 나는, 막상 첫 삽입에서 막혀 버렸다. 몇 년 동안 탐폰을 잘 써왔기에 금방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리컵은 또 달랐다. 탐폰은 딱딱한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 덕분에 쉽고 빠르게 쑤욱 들어갔다면, 생리컵은 실리콘으로 되어있어 탐폰만큼 딱딱하지도 않았고, 손으로 접어서 넣는 형태다 보니 질 안으로 다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펴지는 경우도 많았다. 질 속으로 무언가를 삽입하는 데 거부감이 전혀 없던 나였지만, 생리혈이 흐르는 와중에 손을 넣어가며 생리컵을 장착하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C 폴드로 시도했는데, C 폴드는 윗부분이 다른 폴드에 비해서 넓은 편이라서인지 잘 들어가지 않고 계속 펴졌다. 그래서 펀치 다운도 시도해 보고, 7 폴드도 시도해 보고, 어떻게든 우겨 넣으려고 했는데 계속 실패를 거듭했다. 한 쪽 다리를 들고도 해 보고, 스쿼트 하듯이 반쯤만 앉아서도 시도해 보았지만 힘들기만 하고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변기에 털썩 앉아서 접기 쉬운 C 폴드로 접어서 질 속으로 밀어 넣었는데, 어느 순간 딱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 이거구나. 몸에 힘을 빼고, 자기에게 편한 자세가 중요했다. 탐폰은 자세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삽입이 가능했는데, 생리컵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나 보더라. 내 경우에는 변기에 편하게 앉아서 상체를 약간 뒤로 눕듯이 기대고, 다리를 적당히 벌린 자세가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첫 생리컵 장착에 성공하고, 혹시 몰라 생리대도 하고 나왔는데 조금 불편했다. 생리컵을 어디까지 넣어야 하는 지 몰라서 빼기 쉽도록 손잡이 끝이 밖으로 살짝 보이는 정도까지만 넣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질 입구 쪽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방광에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건 좀 큰 문제였던 게, 내가 신장 쪽이 좋지 않아 방광염과 신우신염이 자주 재발하는 편이라 압박감이 가해져서 좋을 게 없어 보였다. L 사이즈가 커 보여서 S 사이즈를 착용했는데도 방광에 압박이 느껴졌다. 하지만 압박감은 사용하면서 없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레나컵보다 말랑한 재질의 생리컵을 사용하면 괜찮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못 참을 정도는 아니어서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하얀 이불 위에 대자로 누워서 마음껏 뒹굴거릴 수 있었다. 생리 중인데 똑바로 누워 있을 수 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첫 생리컵 삽입에 성공한 기쁨을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어느 순간 이물감이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어? 이거 생각보다 훨씬 더 편한데? 방광 압박만 아니면 탐폰보다 더 이물감이 없었다. 탐폰은 꺼내기 위해서 밑으로 실이 내려와 있다 보니 가끔 그 실 때문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생리컵은 그런 느낌도 없었다. 검색해보니 생리컵을 삽입하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적절한 위치에 안착 되기도 한다더라. 한참을 그렇게 뒹굴거리다 혹시나 샜을까 싶어서 확인해보았는데, 생리대는 하얗고 뽀송뽀송 했다. 그런데 아까는 보이던 생리컵 손잡이 끄트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손잡이가 다 들어가버리면 어떻게 빼내야 하지 싶어서 질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서 손잡이를 찾는데, 당황해서인지 손잡이가 찾아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애인이 보다못해 대신 확인해주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안에 들어가 있다며. 한 마디나 안으로 들어가 있다고? 

그제서야 나는 생리컵 빼는 방법을 검색했다.

생리컵을 구매할 때는 질의 길이를 재야 한다. 생리 때는 포궁이 평소보다 낮아진다고 하고, 흥분 상태에는 질이 팽창해서 평소보다 길어지기 때문에 생리 중일 때 질의 길이를 재야 한다고 했다. 손가락이 조금만 들어갔는데도 포궁 경부가 닿으면 ‘낮은 포궁’, 손가락을 대부분 넣었을 때 닿으면 ‘보통 높이의 포궁’, 손가락이 다 들어갔는데도 닿지 않으면 ‘높은 포궁’.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포궁의 위치에 따라 알맞은 생리컵이 다르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생리 중에 포궁의 위치를 확인한 게 아니라 애인이 애무할 때의 기억을 되살려 대략적으로 측정한 것이어서 보통~높은 포궁이려니 했던 거였다. 그런데 내 포궁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게 위치해 있었다. 그래도 레나컵은 전체 길이가 본체 길이에 비해 긴 편이라 높은 포궁까지도 사용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손잡이를 잘라냈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

다음 날. 늦게까지 자고 일어났지만 하얀 이불은 깨끗했다. 생리대도 묻어난 것 없이 뽀송뽀송 했다. 굉장히 만족스러워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찾아온 고통과 인내의 시간. 전날 생리컵 빼는 방법을 검색하면서 잘못하면 지옥을 맛보게 된다는 글을 읽어 굉장히 겁을 먹은 상태였다. 후우우. 숨을 크게 내쉬고, 몸에 힘을 빼고, 엄지와 검지를 질 안으로 집어넣었다. 한 마디 정도 들어갔을 때 손잡이가 잡혔다. 근데 문제는 손잡이 끄트머리만 잡힌 데다 질 분비물 때문에 미끄러워서 이걸 그대로 잡고 뺄 수가 없었다는 거였다. 그나마 레나컵은 손잡이 부분이 울퉁불퉁하게 되어 있어서 빼기 편하다는데, 생리컵을 처음 빼 보는 나에게는 전혀 편하지 않았다. 차라리 페미사이클처럼 고리 형태였으면 빼기 쉬웠으려나 싶었지만 이미 내 질 속에는 레나컵이 들어가 있는 걸 어찌할까. 생리컵 본체는 너무 깊게 들어가 있어서 만져지지도 않았고, 돌려서 빼라는데 이걸 어떻게 돌려야 하는 건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그렇게 팔에 쥐가 날 무렵, 배에 힘을 줘서 생리컵이 살짝 아래로 내려오게 한 다음에 손잡이를 배배 꼬아서 조금씩 당기다 보니 생리컵이 약간씩 돌아가면서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손잡이를 꼬아가며 천천히 당기다가 몸체가 질 입구 쪽까지 내려온 뒤에는 몸체를 움직여줬더니 쑤욱, 하고 수월하게 빠져 나왔다. 아마 공기구멍으로 공기가 들어가면서 진공 상태가 풀려서 잘 빠져나온 듯 했다. 다행스럽게도 안에 담겨 있는 생리혈이 바깥으로 튀지도 않았고, 다시 넣을 때는 한 번 넣어봐서인지 한 번에 장착에 성공했다.

생리컵만으로는 조금 힘들었다

하루 만에 생리컵에 익숙해진 나를 보며 뿌듯해하고 있을 무렵, 뽀송뽀송한 생리대가 아닌 피가 묻어난 축축한 생리대를 보게 되었다. 살짝 묻어나온 수준이 아니라 다량으로 새어 나와서 생리컵을 빼 보았는데, 안에 생리혈이 조금밖에 안 담겨 있더라. 그리고 섬유질 같은 게 공기 구멍을 통해서 빠져나와 있었다. 그 왜, 생리혈에 보면 실처럼 보이는, 잘 끊어지지 않는 그런 거. 안에서 제대로 펴지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적절한 위치가 아니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공기 구멍을 통해서 생리혈이 새어 나왔던 건지. 레나컵은 단단하고 잘 펴져서 초보가 쓰기 좋다던데. 이물감도 안 느껴져서 적절한 위치에 안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공기 구멍으로는 생리혈이 안 샌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왜 였을까. 생리컵의 신께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였을까? 생리컵을 깨끗이 씻고 다시 넣으면서 생리대도 같이 갈아야 했다. 생리컵 초보에게 생리대나 팬티라이너는 필수였다. 생리대 없이 생리컵만으로 처리가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 깜냥이 되지 않는 나였다.

그 이후로는 다행히 생리혈이 새어 나오는 것 없이 무사히 피의 축제가 끝났다. 생리컵을 사용하면서 샜던 한 번을 제외하고는 내 보지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기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쾌적한 시간을 보냈다. ‘굴 낳는 느낌’도 없었고, 냄새도 없었고, 외음부의 짓무름도 덜했고, 내 마음대로 누워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생리컵을 삽입하고 제거하는 데 익숙해지니까 손에 생리혈 한 방울 묻을 일 없이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정말로 생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 자체가 없었다! (만세!)

많은 사람들이 생리 첫 날부터 생리컵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생리컵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기 때문에 나처럼 생리 양이 피크일 때를 지나서 첫 시도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양이 가장 많은 타이밍에 생리혈이 왕창 새어버리면 큰일이니까. 처음 생리컵 넣을 때 시간이 오래 걸리면 생리혈이 계속 흘러나올 수도 있고, 나처럼 빼는 데 오래 걸리면 생리혈이 넘칠 수도 있고, 밖에서 처리할 때 익숙하지 않아 힘들 수도 있다. 레나컵으로도 생리를 무사히 넘겼지만, 레나컵이 나에게 ‘골든컵’이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올시다. 방광에 느껴지는 압박감 때문에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약간의 잔뇨감이 느껴졌다. 생리컵의 탄력 정도를 1(가장 부드럽고 말랑함)부터 10(가장 탄탄하고 단단함)까지로 수치화 했을 때, 레나컵의 탄력 정도는 5. 수치 상으로는 딱 중앙이지만, 단단한 생리컵보다는 조금 더 말랑한 생리컵이 많기 때문에 조금 단단한 생리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단한 몸체 때문에 잘 펴져서 샐 확률이 낮다지만, 나처럼 방광에 압박감이 있는 사람에게 골든컵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몇 번 더 사용해보고, 방광 압박이 여전하다면 더 말랑한 다른 컵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다음에는 예쁘기도 하지만(레나컵도 예쁘지만 예쁘기로는 릴리컵을 따라올 수 없지) 나에게 적당할 것 같은 릴리컵에 도전해 봐야지.

생리컵의 신이시여, 부디 제게 골든컵을 내려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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