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추미애는 잘생겼다 - 上

세상에는 이념을 배반하게 만드는 얼굴이란 게 있다.

삼김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에서부터 문재인이나 송호창에 이르기까지 정치인의 이미지는 보통 정치 노선에 따라 평가가 갈리지만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사람들은 때때로 그 평가와 관계 없이 타인에게 호감을 느끼게 만든다. 아름다움이란 게 그렇게 무섭다.

어떤 정치인의 용모가 가진 힘을 판별하는 데는 정치적 반대자들의 평가만큼 확실한 게 없다. 정치인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는 정치적 노선에 따라 보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얼굴만 봐도 괜히 미워 보이는 반대자마저도 매료시키는 얼굴이라면? 바로 그게 ‘이념을 배반하게 만드는 얼굴’이다. 

이렇게 잘생겼는데 머릿속은 왜 빨갱이인지

예컨대 참여정부에 대한 악의가 가득한 일간 베스트에서는 비정기적으로 한 번씩 문재인이 잘생겼다며 수군거리는데, 일간 베스트 이용자의 반응은 대체로 세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문재인이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문재인은 태어날 때부터 서글서글한 아기였을 것이고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대단히 근사하게 생겼다. 심지어 수염도 멋있게 난다. 손질한 것도 아니고 그냥 면도를 못한 것 같은데 하나도 안 지저분해 보이고 마냥 잘생겼다.

둘째로, 문재인은 잘생기지 않았고 이명박과 박정희가 진짜 잘생겼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들은 노선 보정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외모 평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쯤 되면 아직 거기까지는 안 간 일간 베스트 이용자들도 면박을 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박정희가 아무리 반인반신이라고 우겨봤자 동네 PC방 가면 있는 얼굴이다. 이명박의 수트핏이 아무리 매끈해봤자 그는 이명박이라는 존재의 한계에 부딪힌다. 논할 잘생김이 있어야 얘기하고 자시고다.

세 번째는 좀 다르다. 이들은 문재인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데 탄식을 덧붙인다. 이렇게 잘생겼는데 머릿속은 왜 그렇게 빨갛냐며 문재인과 자신의 정치적 노선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이미 얼굴 때문에 호감을 느껴서 지지하고 싶어졌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울 때 저런 소리가 나온다. 앞선 둘은 용모를 평가하거나 노선을 평가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마지막은 용모에 굴복해서 그를 지지하고 싶어지기까지 했으니 보시라, 이것이 이념을 배반하게 만드는 얼굴의 위용이다.

딱히 문재인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부 좌파들은 치를 떨며 김종필은 인간이 김종필이지만 그래도 젊었을 적 얼굴은 삼김 중에 으뜸이었다고 투덜거리고, 안철수라면 치를 떠는 친노 유권자 중 일부는 의정보고서를 화보로 만들었던 송호창에 대해 탄식하고, 호주제 폐지 입법 발의안에 서명하지 않은 유일한 여성 정치인인 추미애에 대해 어떤 여성주의자들은 왜 그렇게 잘생겼냐며 통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이 하필이면 나다. 나라서 문제다. 나는 추미애의 얼빠다. 아, 세상에. 그래도 이왕 이렇게 얘기를 하는 김에 어디 한번 선언해 보겠다. 이 자리를 빌어 이르노니 세상아 들어라, 추미애는 잘생겼다. 비록 58년생 경상도 출신 서울 거주 남성과 크게 다를 바 없이 굴더라도 추미애는 잘생겼다!

권력

위에서 실컷 하기는 했지만 정치인의, 특히 여성 정치인의 외모를 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례한 일이다. 외모를 논하는 일은 외모를 평하는 일과 종이 한 장 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정치인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자산이다. 원조 아이돌 직군이 가지고 있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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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2016년 연말의 묵직한 이슈였던 박근혜 게이트 때, 나는 한 장의 사진에 꽂혀버렸다. 2016년 11월 2일에 박근혜 대통령의 개각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의원 총회가 열렸다. 그 의원 총회에 참석하는 추미애의 사진은 내게 대단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무채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들을 뒤에 거느리고서 짙은 붉은색 재킷을 입은 채 서 있는 추미애의 흰 얼굴은 웃지도 찌푸리지도, 그렇다고 아주 무표정하지도 않았다. 추미애가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은 사진에 그대로 담겼고 나는 한동안 꽤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혔다.

내가 추미애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판사 출신, 대한민국 최초 여성 지역구 5선 의원,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안을 한 번 가결시켰던, 최초 대구 출신 민주당 당대표. 16년만의 여소야대 국회에서 다수당인 야당의 대표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은 어디까지일까. 나는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추미애의 사진에서 권력을 읽었다. 힘이 있는 여자를 보았다. 안성맞춤으로 성깔도 있었다. 당론으로 탄핵이 결정되자 국회에서 조선일보를 읽어버리는 성격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옛 것이나 지금 것이나 근사한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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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추미애의 힘은 제왕적 패권이 아니다. 국가 의전 서열 8위라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의 권력이란 패도적이지 않을수록 모범적인 법이다. 많은 견제를 받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이 결렬되었을 때 드러났다. 그러나 때로는 그 자리에 여성이 있기만 해도 다른 여자의 시선을 끌곤 한다. 비록 여성주의적 정책을 열심히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추미애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 사진이 내게 왜 깊은 인상으로 남았을까.

큰 일 하는 여자

나는 큰 일 하는 여자가 좋았다. 어려서부터 여자들이 권력을 얻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현실 정치에서는 참 보기 드문 일이었다. 여성 정치 세력화를 목적으로 여성계가 정치권을 압박해서 꽤 괜찮은 성과를 이루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으나 그래도 국회의사당은 아저씨 천지였다. 선거철 벽보에 간간이 여자를 볼 수 있던 것도 그나마 수도권에 살아서 가능했다. 힐러리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농담을 들을 때마다 왜 힐러리가 대통령을 안 하느냐는 의문을 마음 속에 품던 시절이었다.

정치인이 여성이면 괜히 한 번 더 눈길을 주는 사람이, 추미애가 당 대표가 되어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정국에 이르니 뉴스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현재 야당 대표 중 두 사람이 여성인데 하나는 모든 사진을 느와르로 만드는 추미애고 다른 하나는 웬만한 보스 타입 남성 정치인들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보스 기질의 심상정이다. 대장 할 만한 사람들이 대장을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전통의 정치인 기질론을 즐기는 유권자로서 흡족해 했던 것도 사실이다. 삼김은 다들 인물이 좋았고 YS는 지르는 성격이지만 DJ는 버티는 성격이라는 밥상머리 정치인 기질론은 내게도 전승되었다. 자전거 타는 법을 한 번 배우면 결코 잊지 못하듯 그렇게 익힌 기질론은 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남았다. 해보면 재미있지만 크게 유의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포기하자니 조금 아쉬운 일로.

이렇게 사이비 기질론에 푹 젖어 뉴스를 보고 있자니 추미애한테 점점 관심이 생겼다. 그는 일본화 속 인물처럼 고전적인 선을 지녔는데 표정은 야심에 가득 차 생동감이 넘친다. 선거할 때는 "호남의 며느리", "민주 종가의 맏며느리", "어머니의 마음" 같은 전통적 성역할에 알맞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원조 민주당 '핵이빨'은 예전부터 설전으로 유명했다. "야당이 쪽수가 모자라" 같은 말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심상할 정도였다. 비례대표를 주겠다는데도 지역구로 가겠다고 스스로 나서, 초선부터 광진구에서 당선되었다. 첫 번째 탄핵 직후 총선에서 낙선한 것 외에는 한 지역구에서 5선을 하고 있으니 가히 광진구의 영주라 할 수 있었다. 판사에서 정치인까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갔으면서도 마모되지 않고 중심을 지키고 있는 단단한 자의식에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중진급 이상 정치인이면 인간적 매력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지만, 추미애는 파면 팔수록 신기한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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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결정적으로 추미애는 잘생겼다. 오밀조밀 예쁘장한 것이 아니라 깎아놓은 듯 잘생겼다. 20대 국회의 얼굴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깨 선에 닿는 길이의 웨이브 파마를 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꽃분홍색 치마 정장을 입고 다니실 때에는 내가 그 잘생김에 관심이 없었다. 숏커트를 하고 바지 정장을 입을 때까지만 해도 추미애 잘생겼다는 호들갑에 그냥 맞장구 치는 정도였다. 민주 종가를 지킨 호남의 며느리가 새색시의 마음으로 연분홍 재킷을 입은 채 당원 동지들에게 큰절 올리겠다 하던 2016년 당 대표 경선 때도 "소원 성취하셨네." 이상의 감상이 없었다. 탄핵 정국에 들어서 뒤에 수하들을 거느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을 때야말로 온전히 찬탄할 수 있었다. 깊게 반성한다. 내가 가부장제로 눈이 가려져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잘생김을 알아 보지 못했다. 그건 진짜였다. 아, 추미애여.

2017.02.08 16:55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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