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넷플릭스: 파이널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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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넷플릭스: 파이널 테이블

이그리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파이널 테이블> 

회차 정보: 시즌 1개, 에피소드 총 10개

러닝타임: 각 편당 50분 내외

추천합니까?: 예. (단 야식이 삼삼한 시간엔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글의 본론인 <파이널 테이블>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한 가지 사실을 고백한다. 나는 자극적인 리얼리티 쇼를 즐겨 마지않는 사람이다. 특히 그 중 매회 인간성의 기본을 시험하는 <헬스키친>과 같은 리얼리티쇼는 한때 나의 최근 시청목록을 가득 채우곤 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아래 마셰코)에서는 참가자들이 몇 시간동안 서서 손으로 머랭을 치는 각 시즌의 초입을 보며 기묘한 가학심에 길들여져 즐거워하기도 했다. (머랭은 그냥 거품기로 치면 되는 것을. 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참신하게 사악할까?)

 

최악보단 최고를

물론 <마셰코>나 <헬스키친>이 아마추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쇼라는 데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지만, 넷플릭스의 자체제작 리얼리티 쇼인 <파이널 테이블>은 어떤 순간에도 참가자들을 우습거나 만만하게 만들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내가 처음 이 쇼의 에피소드 몇 개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낯설음을 느꼈을 것이다. 누구도 못하지 않는 경연이라니. 그러면 대체 어떻게 매 회 탈락자가 생긴단 말인가. 기묘하기 짝이 없다. <파이널 테이블>의 참가자들은 2인 1조의 팀인데, 한쪽에게 사사받은 스승-제자와 유사한 관계도 몇 있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의 커리어를 가진 동료다. 유사 스승-제자인 경우조차 제자 쪽의 커리어가 모자라지 않다. 매회 주제로 선정된 각 나라의 대표 요리를 재해석해 내놓는 각 팀의 요리는 참신하다. 

<파이널 테이블>은 넷플릭스가 들여온 다른 리얼리티 쇼인 <패션 펀드>와 유사하다.  이미 업계에서 나름의 명성을 얻고 있는 이들이 더 큰 명예를 위해 최고의 전문가들 앞에 자신의 성취를 선보인다는 면에서 그렇다. 그래서 두 쇼의 심사위원과 호스트 역시 업계의 '거물'들 뿐이다. <파이널 테이블>의 호스트가 미식 잡지 <본아페티>의 편집장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최악을 내치는 것이 아닌 매 순간의 최고를 가리는 것에 프로그램의 초점이 맞춰지면, 프로그램의 내용은 건조하고 정갈해진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는 요즘 리얼리티 쇼의 트렌드처럼 각 참가자에게 이입하고 그들을 응원하기보단 또 다른 아마추어 크리틱이 되어 경연 내 그들의 성과를 비평할 수 있게 된다. <파이널 테이블>이 리얼리티 쇼로서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바로 이 지점이다. 나도 그 높은 수준의 '테이블'에 한 자리 차지한 것 같은 달콤한 착각. 잠시간의 고상함을 즐길 수 있는 50분. 

존중, 상상력, 매력

그래서 <파이널 테이블>의 결과물은 친근하진 않더라도 놀랄 만 하다. 요리를 다루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의 결과물이 하나의 스펙타클로 기능한다. 다른 요리 경연대회의 결과물들을 보면, 함께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다 마음을 졸이고 어찌어찌 촉박한 시간 내에 사람이 먹을 만한 요리를 무언가 만들어내면 안심하는 수준이었던 것과 아주 다르다. 당장 덜 손질되거나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재료가 최종 결과물에 등장하는 빈도만 봐도 타 리얼리티 쇼보다 현저히 낮다. 사실은 거의 없는 수준이지만 평가단과 요리사의 견해차에서 발생하는 익힘 정도의 논란에 가깝다. 

시청자는 제 3의 판정단으로서 일단 멋진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제 하에 각 팀의 요리가 멋지게 완성되는 과정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셰프들의 요리법을 감상하며 파인 다이닝의 세계를 엿보는 것은 유쾌한 덤이다. 액체 질소, 수비드로 익힌 고기와 계란, 콩피 등 각 셰프가 갈고 닦아온 현란한 요리 기술과 시각적 신선함을 선사하는 플레이팅은 '요리가 (좋은 뜻으로) 이럴 수도 있구나'를 보여준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특히 결승전 전까지 총 아홉 개의 나라를 각 에피소드마다 다루며, 각국의 대표적인 요리를 셰프들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을 보는 건 무척 재밌다. 때로는 그 나라 출신의 셰프가 높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평범한 결과물을 내놓아 탈락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메인 과제 요리를 한 번도 먹거나 조리해 보지 않은 셰프가 자신만의 접근으로 놀라운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심사위원단은 적당한 무게감과 적당한 화제성을 갖추었다. 주로 유명 연예인 둘에 그 나라의 유명한 미식 평론가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결승 직전 편인 프랑스만 예외로 두 명의 미식 평론가가 등장했다.) 파이널 테이블 챌린지로 등장하는 셰프들과 그들의 레스토랑, 업적, 성취를 소개받는 것도 즐겁다. 죽기 전에 한 번 쯤은 저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보면 좋겠다는 달콤한 상상이 가능하다. 

인격적인 모독이나 황당한 도전 없이도 (아무리 협찬이라지만, <마셰코>에서 시판 소스를 활용한 요리를 만들어 내라는 주문은 사실 자신을 셰프로 생각하는 요리사라면 상당히 모욕적인 게 아닌가 생각했던 때가 있다) 견고하게 잘 짜여진 <파이널 테이블>에는 드라마가 없는 대신 존중이 있고, 존중은 각 셰프들의 실력을 매력으로 빛나게 만든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 셰프가 집안 사정이 어떻고, 무엇이 난관이었고와 같은 개인적인 서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들의 요리와 성취만으로 셰프를 눈여겨보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파이널 테이블>에 출연하는 것이 이 셰프들에게 커리어 부스트가 되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지어 첫 회에 탈락한 팀마저도 일찍 도전을 멈추게 되어 아쉬울 뿐이지, 대단히 체면이 깎이는 안타까운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 

It's a man's world

보는 내내 큰 아쉬움이랄 것은 없었으나, 스스로를 비백인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에게는 걸리적거리는 순간이 몇 군데 있긴 했다. 오랜 시간동안 요리 업계에서 여성들이 고군분투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연자 중에서도, 각국을 대표하는 셰프 중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현저하게 적다는 점은 슬프다. 처음부터 출연자 중 여성의 비율이 매우 적었기에 경연이 중반을 넘어서면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남아있는 참가자들은 전부 백인 남성이다. 비백인 남성은 단 두 명 뿐이었으며, 이들도 경연 초반에 탈락한다. 아직도 파인 다이닝의 세계는 백인-남성 주도적이라는 사실을 리얼리티 쇼가 재확인시킨다.  

비서구권의 요리를 최대한 많이 등장시키려 했을 것이나, 결과적으로 등장한 국가는 아시아 두 곳(일본, 인도),  미대륙 세 곳(미국, 멕시코, 브라질) 유럽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으로 사실상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요리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반 이상이다. 특히 그 중 미국 에피소드는 다소 억지를 부린 기분도 든다. 정확한 시그니처 디시가 하나씩 꼽히는 다른 나라의 에피소드에 비해, 미국에선 그 '하나'의 디시를 꼽기가 힘들었는지 추수감사절 만찬이 메인 경연의 주제로 등장했다. 이 나라의 선정만으로 파인 다이닝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는 세계의 권역이 어디인지 가늠이 가능하다. 

최종화 역시 다소 김 빠지는 진행이었다. 여태까지 2인 1조로 경연을 진행하다가 셰프들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만 개인으로 경연을 펼치는데, 팀으로 가지는 시너지가 제거되니 참신함은 떨어지고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넷 중 누가 우승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아서, 그 중 하나가 우승해도 대단히 진한 감동이나 납득은 없다. 그냥 '아, 그러려니.' 정도. 

심야엔 피해가세요

리얼리티 쇼라면 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탓에 한 번 틀어 약 사흘간 정주행을 하였으나, 이 쇼가 정말 해로운 시간대는 심야다. 혹은 배고픈 오후도 마찬가지다. 매 회 나오는 요리가 그렇게 때깔이 좋을 수 없어서 대표 음식으로 등장하는 각국의 요리를 먹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 차게 된다. (인도 편을 본 저녁은 결국 무르그 마카니를 배달시켜 먹고 이상한 만족감을 느꼈다.) 에피소드의 길이도 한국 드라마의 한 편당 시간과 비슷하다. 약간의 아쉬운 점을 감안하고도 큰 에너지 소모 없이 틀어놓고 보기 적당한 프로그램으로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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