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여성 예능에 (아)재 뿌리기

알다예능한국 남자

다 된 여성 예능에 (아)재 뿌리기

김다정

2016년이다. 

지상파 여성 예능의 시초격인 ‘여걸 파이브’가 시작한 지 무려 12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한국의 여성 예능은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2016년 8월을 기준으로 현재 방영중인 ‘여성’ 예능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하라는 평가는 안 하고
JTBC: <걸스피릿>

2016년 7월, 여성 아이돌 그룹의 보컬이 온전히 자신만의 무대로 경연을 벌인다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12개의 걸그룹(스피카, 피에스타, 레이디스 코드, 베스티, 라붐, 러블리즈, 소나무, 오마이걸, 에이프릴, 우주소녀, 플레디스 걸즈)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각 멤버들이 노래로 대결을 벌이며, 이들을 평가하는 사람은 청중평가단과 오구루로 불리는 멘토단이다.

열 두명의 여성 보컬은 매번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진심을 다해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게다가 제작진이 시도하는 악마의 편집에 쉽게 넘어가 주지도 않는다. 캣파이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터뷰 장면에 삽입했던 자막은 억지스럽다는 평가와 함께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이들은 괜한 견제나 감정 소비는 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의 무대에 감탄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사진 제공 = JTBC

이들을 평가하는 일명 ‘오구루’는 서인영, 이지혜, 장우혁, 천명훈 그리고 탁재훈이다. 오구루 중 남성 셋을 제외한 두 명의 여성 멘토 역시 맡은 바 역할을 다 하려고 노력한다. 서인영과 이지혜는 실제로 자신이 오랜 시간 활동한 여성 보컬이었기 때문에 터득할 수 있었던 팁을 공유하고, 멤버들의 무대를 진지하게 평가해준다. 남성 멘토들의 ‘평가 같지도 않은 평가’를 당당하게 반박하고 나서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옷으로 면박을 주거나, 여자깡패 혹은 선빵여신이라고 놀려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 JTBC

그런데 이들에 비해, 걸그룹의 메인 보컬을 평가하겠다며 앉아 있는 남성멘토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장우혁, 천명훈, 그리고 탁재훈. 보컬 실력이나, 무대 구성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들이다. 물론 이 셋에게도 ‘멘토링’을 해 줄 만한 각자의 사연과 경력이 있을테다. 장우혁은 1세대 아이돌이자 제작자이며, 탁재훈은 의외의 보컬리스트, 그리고 천명훈은 다수의 히트곡을 탄생시킨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하라는 평가는 안 하고 ‘아재개그’를 시도 때도 없이 던진다. 열정을 다 한 무대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옥타곤 클럽에 온 것 같아요.’
‘너무 어린 척 하고 있어요.’
‘혹시 술 먹었어요?’

다른 음악 프로그램에 나가서 이런 멘트를 평가랍시고 던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평가라기보다는 일종의 모욕이다.

심지어 걸스피릿의 6회 경연 무대는 군부대 장병들 앞에서 진행되었다. 이 또한 ‘보컬 대결’이라는 컨셉을 가진 타 음악 프로그램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다른 어떤 보컬 경연 프로그램도 가수를 군부대로 보낸 적 없다. 이들은 단지 ‘걸그룹’의 보컬이라는 이유만으로 평가 같지도 않은 평가를 들으며, 군부대로 위문공연을 가야 했던 셈이다.

사진 제공 = JTBC

<걸스피릿>에서 봤어야 할 광경

: 걸그룹 보컬들의 화려한 무대와, 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실제로 보는 광경

: 남자 멘토 세 명의 ‘평가 같지도 않은’ 아재 개그

아저씨, 언니들 노는데 뭐하세요?
Mnet: <언프리티 랩스타 3>

여성 래퍼들이 나와 겉모습과 상관없이 온전히 ‘랩 실력’으로 겨루자는 기획의도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는 이제 명실공히 여성 중심 예능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았다. 시즌 1, 2 모두 숱한 화제를 낳았으며 ‘걸크러쉬’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현재는 시즌 3가 방영중이며 참가자는 미료, 육지담, 하주연 , 전소연, 자이언트 핑크, 케이시, 유나킴, 나다, 제이니, 그레이스, 쿨키드, 애쉬비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여성 래퍼들은 알아서들 서로 잘 싸우고, 응원하고, 랩을 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커리어를 쌓아 온 래퍼이며, 그만큼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그 기대가 깨지거나 상대방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디스를 한다. 대신 실력적인 면에서 역량을 보여주면 바로 이를 인정하고 칭찬하기도 한다.

사진 제공 = Mnet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잘 활용’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굳이 랩이 아닌 섹시함을 부각했어햐 했’느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여성에 의해, 여성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주체적인 여성 래퍼를 앞에 두고 진행자 YDG가 하는 싸이퍼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수많은 미녀 배우들을 상대한 YDG 야수’,
‘꽃밭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영광, 설레는 가슴 뛰지 야후’

결혼 전 미녀 배우를 상대로 연기한 자신이 결혼 후에는 여성 래퍼로 가득한 꽃밭에 앉아서 설렌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세 번째 트랙의 비트를 만든 프로듀서 쿠시는 이런 비유를 하기도 한다.

사진 제공 = Mnet
이 트랙은 제가 낳은 아이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아이를 잘 돌봐줄 분이 아마 이 트랙의 주인이 되지 않을까.

<쇼미더머니>에서였다면 ‘아이’ 어쩌고 하는 비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이 단순히 양념이나, 남성 래퍼에 비해 하등한 무언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 유일한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서조차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

<언프리티 랩스타 3>에서 봤어야 할 광경 

: 여성 래퍼들이 싸우고, 칭찬하고, 디스하는 힙합 경연.

실제로 보는 광경 

: 남성 진행자의 ‘꽃밭’ 싸이퍼와 남성 프로듀서의 ‘아이’ 비유

멘토는 남자의 몫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KBS2에서 4월 신설한 프로그램이다. 라미란, 홍진경, 김숙, 제시, 티파니 그리고 민효린 여섯 멤버가 각자 이루고 싶었던 꿈을 하나씩 이뤄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반 지지부진한 시청률을 보이다가, 언니쓰라는 프로젝트 걸그룹을 시작하면서 상승세를 탔다. 이들의 성공은 ‘여성 예능 전성시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여럿 만들어 낼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여성 멤버들은 모두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서로의 합도 좋으며 따라서 그들의 관계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만들어낸다.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정하는 것도, 그 안에서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 내는 것도 모두 ‘언니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클레홍파트라’가 되는 것, ‘클레홍파트라’를 만드는 것, ‘클레홍파트라’를 보고 웃는 것 모두 그 자신들이다. 

사진 제공 = KBS2

그러나 멤버들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이들은 언제나 남성이다. 그런 점에서 1회는 특히 상징적이다. 여성 멤버에게 예능에 대한 조언을 하기 위해 섭외된 사람들은 ‘남성 예능인’인 데프콘, 김종민, 그리고 차태현이었다. 게다가 ‘따듯한 조언’을 부탁한다더니 마치 면접을 보는 것과 같은 구도로 각 여성 멤버를 심사하도록 했다.

사진 제공 = KBS2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숙이 처음 꿈 계주로 나서 발표한 목표는 ‘관광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면허를 취득하고, 멤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형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상대는 당연하다는 듯 남성 연예인인 송일국이었다. 

두 번째 꿈 역시 그렇다. 특히 화제가 되었던 프로젝트 걸그룹 ‘언니쓰’의 프로듀서는 박진영. 자신의 욕망을 ‘솔직함’을 가장해 드러내고, 여성의 엉덩이를 찬양하는 노래를 ‘취향’이라며 불러대는 남자다. ‘언니쓰’의 노래와, 춤과, 가사는 그가 ‘허락’을 해야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방송 내내 박진영은 ‘언니들’ 모두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사진 제공 = KBS2

꿈은 ‘언니들’이 꾸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주체도 ‘언니들’인데 왜 도움을 주는 이는 항상 남성이어야만 하는가? 떡하니 “(환) 여 자 예 능 (영)”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시작한 첫 방송이 무색하게 고민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봤어야 할 광경 

: 개성있는 여성 캐릭터와 그들이 꿈을 이루어 나가는 가슴 뭉클한 예능

실제로 보는 광경 

: 여성이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겠다며 나서는 남성 멘토, 박진영

말했듯이, 2016년이다.

그러나 여성 예능은 12년 전의 <여걸 파이브>에서 발전한게 하나도 없으며,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성 예능 전성시대’라는 표현이 당당하게 쓰인다. 단순하게 개개인으로 부각되는 여성 예능인이 등장하고,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프로그램이 몇몇 주목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동시에 이들이 또다시 남성 출연자에 의해 평가 당하고, 남성 출연자의 가르침을 받고, 남성 출연자에게 예쁨 받기 위한 대상으로 포장되는 것은 ‘여성 예능’의 당연한 한 단면이 된다. 다 된 여성 예능에 (아)재를 뿌려 망쳐 놓고도, 그것을 당당하게 ‘여성 예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러니까, 다 된 여성 예능에 (아)재 뿌리기는 그만 하자. 평가를 해도 여성이 하고, 개그도, 디스도, 서로를 칭찬하는 것도 모두 여성이 주체적으로 하는 순간에만 그것을 ‘여성 예능’이라고 부르자. 적어도 퇴보는 그만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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