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다른 연극 1. 무례한 미아의 이동좌담회

알다페미니즘 연극제연극

좀 다른 연극 1. 무례한 미아의 이동좌담회

한우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6월20일, 제 1회 페미니즘 연극제가 개막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문을 던지는 연극들을 소개한다. 인터파크에서 모든 연극을 예매할 수 있으며 핀치클럽은 4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황가림

낯선, 그러나 친밀한 미아들의 세계

47분에 출발하시면 됩니다. 자, 이제 출발하세요. 스태프의 말에 귀에 이어폰을 꽃은 채 더듬거리며 걸어 나갈 때, 나는 정말로 세상의 미아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로 가야하나.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방향상실의 감각. 그 때 저만치에 노란색 박스가 눈에 띄었고, 생각할 겨를 없이 미션이 시작되었다. 

여자는 이래서 안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할 때 무례한 일을 당해본 적 있다.
나는 흙수저라고 생각한다. 

Yes면 한 발짝 앞으로, No면 제자리에 머물러야 하지만 내 대답은 계속해서 Yes 뿐. 벌써 저만치 출발선이 멀어졌다. 나는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당한 게 많은 고학력비정규직젊은여성흙수저… 나의 처지가 문득 서글퍼질 무렵, 두 번째, 세 번째 미션이 이어졌다. 

붐비는 맥도날드의 2층에 오르자 말 대신 비밀스럽게 손바닥을 펴서 지령을 알려주던 세 번째 미아는 마치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본인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나누어주었다. 여성점원에게 접객을 고집하며 성희롱을 일삼는 개저씨와 무례하게 말을 자르고 반말하는 손님들, 알바를 그만두겠다는 말에 화를 내며 촬영한 영상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장까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에어컨 바람을 쐬며 즐긴 아이스크림 때문이었을 수도). 

맥도날드를 나와 아무도 없는 길에 덜렁 놓인 탁자 앞에 앉아 들었던 임막내의 이야기도 좋았다. 각종 꼰대 선임들에게 시달렸던 그녀에게 위로를 보내며 나도 독해질 거야. 살아남자. 그러나 선임과 같아지지는 말자. 귀여운 다짐과 토닥거림을 포스트잇에 적어 두고 왔다.

운동장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여자아이들

가장 연극적이었던 순간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미아와 함께 찾아왔다. 오래된 주택가의 비좁은 골목에 서서 몸에 맞지 않는 크고 헐렁한 파란색 축구복을 입고 공을 차던 미아. 내가 들어서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황가림

여자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 한 켠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를 떨거나 공을 차는 남자아이들을 구경했었다. 체육이 내키지 않으면 쉬거나 자습도 가능했다. 땀을 흘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둥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아니다. 그저 주변의 여자애들 중 누구도 일어나 뛰거나 공을 차지 않은 탓이 컸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을 나 혼자 하는 건 괜히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신나게 혼자 공을 차던 미아가 같이 할래? 라고 물어왔을 때, 어쩐지 유년시절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먼지가 피어오르는 운동장 한 가운데 서서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 함께 공을 찼다. 우스꽝스럽게도 즐거웠다. 그러더니 금세 쪼그려 앉아 마치 이제 친구가 되었으니 비밀을 들어달라는 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성에 관한 사소하고도 커다란 비밀들, 단짝친구에게 속삭이듯 건네는 말들, 나도 그런 생각해본 적 있어. 왜 아무도 그런 얘기는 안 해줬을까.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오래간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그녀를 꼭 끌어안아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뒤늦게 아쉬움이 남았다.

뒷골목을 헤매며 멈춰서길 반복하다가 언덕을 오르자니 익숙했던 도시가 낯설게 느껴졌다. 어쩐지 도시를 가로지르며 유영하는 산보객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일찍이 보들레르와 벤야민은 근대도시 익명의 군중 사이를 부유하며 떠도는 산보객을 플라뇌르(Flâneur)라 칭한 바 있다. 19세기 도시에 출현한 새로운 남성 인물형인 플라뇌르는 도시의 풍경을 텍스트 삼아 해석하고 감상해왔다. 여성으로서 도시를 활보하며 감상하는 나는 나의 덜 정숙한 자매들 ― 시인, 넝마주이, 레즈비언, 늙은 여성, 과부, 매춘부 ― 과 함께 길거리를 헤매는 플라뇌즈(Flâneuse)일테다.린다 맥도웰. 『젠더, 정체성, 장소』. 여성과 공간 연구회 역. 한울아카데미. 2010.

피임을 위해 온 몸으로 싸운 여자들

낙산공원에 다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해가 저물고 있다. 슈퍼를 차리고 앉은 미아로부터 슈퍼에 들른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정숙치 못한 여성 산보객들이 들르기 좋게 길가에 내앉은 낡은 슈퍼. 털털털 소리를 내며 선풍기가 돌아가고 주전자에 담긴 뜨끈한 보리차를 대접하는 곳. 

이곳을 지키는 주인 할머니로부터 아무런 피임지식도 도움도 받지 못했던 시절을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내어 왔는지에 관해 듣는다. 과거로, 이야기 속으로, 나락으로 함께 빨려 들어간다. 성폭행으로 생겨난 뱃속의 아이를 지우기 위해 배를 찌르고, 죽을까봐 두려워 달달 떨면서도 지붕 위에서 뛰어내렸던 경험에 관하여. 성관계 후에는 뒷방아를 찧으며 구르고, 콘돔 대신 창호지를 찢어 틀어막으면서 요행을 바랐던 마음들에 대하여. 자신을 학대하면서까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장하고자 했던, 자율성을 지키고자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나는 19세기 초 뉴욕의 간호사 마거릿 생어를 떠올렸다. 

ⓒ황가림

생어는 피임이나 임신중절 방법을 알지 못했던 많은 노동계급의 여성들이 성인기의 대부분을 임신한 채 출산과 양육의 고통 속에서 절망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18번이나 임신과 출산을 거듭한 끝에 젊은 나이에 사망한 터였다. 피임을 가르치는 것이 불법이자 불경하고도 부도덕한 죄로 구속당하던 시절,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성들에게 피임법을 가르쳤다. 심지어 음란물 유포와 불법클리닉 운영이라는 죄목으로 수감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생어는 여성용 콘돔의 초기적 형태인 고무격막(diaphragm)을 배포하는데 앞장섰으며 호르몬 조절을 통한 경구용 피임약의 계발에도 힘을 보탰다.

이처럼 피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자율적으로 피임을 실천하며, 출산 시기와 터울을 스스로 결정하고, 필요한 경우 임신을 중단할 선택권을 갖는 것은 각국의 여성들이 싸우고 쟁취해온 주요한 페미니즘의 의제다. 피임과 임신을 둘러싼 권리는 성추행과 성폭행을 비롯해 원치 않는 성적 침해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와 더불어 여성의 신체온전성(bodily integrity)을 유지할 권리를 구성해왔다. 아직도 임신중단을 원한다면 위험하고 값비싼 불법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이러한 성적 자기결정권 및 자율권의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다.

같으면서도 다른 자매들

<억척어멈과 코온돔>은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흥미로운 방식의 서사구조를 활용했다. 슈퍼에 나타난 여성은 임신 중기 또는 말기로 겉보기에도 임신했음이 드러나 보인다. 태동과 어지러움으로 잠시 슈퍼에 들른 여성은 주인집 할머니로부터 대뜸 피임을 잘하지 그랬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는다.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 속에는 피임과 콘돔사용을 쟁취해 온 여성투쟁의 역사가 녹아들어있다. 반면에 젊은 여성은 임신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충격을 받았던 경험과 간신히 임신을 하게 되어 기뻐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두 명의 여성이 나란히 설 때 우리는 임신한 여성의 건강권, 불임여성을 돕는 지원책, 피임 및 임신중단시술에 대한 정보 제공 및 접근권 확보 등이 모두 함께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어느 누구의 경험이 더 시급한지 따져 물으며 억압을 위계화하고 불행을 경쟁하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와 나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우리의 경험은 다르지만 유사하기도 하다. 그녀의 권리주장은 나의 이해관계와 상충하지 않는다. 우리 내부의 이질성을 서로 다정하게 바라보기. 결국 우리는 친밀하지만 낯선 이 도시의 산보객이자 미아들이기 때문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미아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 끄집어내고 나누어주는 미아들을 보면서 이 도시를 나 홀로 헤매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곳곳에 불온하고 공손하지 않은 나의 자매들, 여성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으니 말이다. 기획자의 말처럼 우리는 언제나 0에서 1사이를 난항 중이지만, 그러나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먼저 말을 꺼내어준 미아들이 고맙다. 

한우리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좀 다른 연극

페미니즘 연극제에 관한 다른 콘텐츠

연극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