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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페미니스트 1. 칼라 오캄포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아시아 여성을 위한 웹진 <April Magazine>의 영문 기사를 핀치가 번역했습니다. 원문은 여기로!

"정말로, 강간이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란 말인가?"

칼라 오캄포는 파트너 레스터 밸과 함께 쓰고 감독한 다큐멘터리 <본톡, 강간없는 사회(Bontok, rapeless)>에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류학자 준 프릴-브랫은 필리핀 코르디레라스 산맥의 본톡 지역을 연구했다. 본톡 지역 토착민들은 '강간'이라는 단어도, 개념도, 사건도 없이 몇백년간 살아왔다.

오캄포의 다큐멘터리팀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본톡을 다시 방문해 강간 없는 사회가 여전히 존재하는지 알아보았다. <본톡, 강간없는 사회>는 2014년 필리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뉴욕 세계 TV&영화 어워드에서 최종경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칼라 오캄포는 <에이프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해, 성폭력 생존자들과 가해자들의 반응에 대해, 또한 #미투 시대에 강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테드XADMU(아테네오 대학)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강연을 했는데.

주최측에서 나에게 '만약?'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달라고 해서, 나는 이런 제안을 했다. "만약 우리가 전통적인 필리핀의 'Kapwa' 문화를 강간 문화에 반대하는 안티테제로 되살린다면?" 주최측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네요!"라고 반응했다. 그래서 강연을 하게 됐다.

테드 강연을 준비하면서 정말 긴장했다! 테드 브랜드가 얼마나 큰 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천여 명 앞에서 강연할 거라고 주최측이 알려준 순간, 포기하고 싶었다. 실제로 "아뇨, 못하겠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를 추천했던 사람 중에 캣 알라노라는 친구이자 강간 생존자가 떠올랐다. 이 강연 이전에도 우리는 다른 생존자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여성들의 존재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줬다.

당신의 테드 강연 내용을 짧게 말해줄 수 있나?

우리는 강간 문화를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 중 하나가 대안 문화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전부터 잘 작동한다고 증명된 문화여야 한다. 필리핀 토착민들의 'Kapwa' 문화가 바로 그렇다. 고작 몇 세대 전에, 우리에게는 진정 강간이 없는 자생적인 지역 공동체가 있었다. 강간이 없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성별을 떠나 서로를 존중했고, 어떤 '대가'를 원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배려와 걱정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그게 'Kapwa' 문화다.

최근 부상하는 여성 감독 중 한 명으로서, 당신의 작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솔직히, 나는 내가 의지가 강하고 지적인 다른 여성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느낌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업계 사람들은 내 작품은 알고 있지만, 내 이름이나 얼굴은 잘 모른다.

나는 현재 필리핀 영화계의 무기력한 엄마, 창녀, 또는 처녀라는 여성 스테레오타입으로부터 탈출한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는 극영화 최소 2개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내 독특한 위치는 '지방에 사는 여성 감독'이다. 그래서 나는 주요 인물들에 현재 필리핀 영화계에서 소외된 요소를 여러 겹 겹쳐놓고는 한다. 마초적이지 않거나, 마닐라족이 아니거나, 도시 여성이 아니거나, 우연히 싸울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를 타고난 LGBT거나.

당신은 몇 년간 수많은 프로젝트에 작가, 편집자, 또는 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런 경험들이 <본톡, 강간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연결됐나? 구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나는 강간 생존자다. 당연히 강간없는 사회에 대한 연구에 깊이 공감됐다. 또한 이건 너무나도 들려줘야만 하는 이야기다. 이건 단순히 필리핀 토착민이 의식을 하고 춤을 추고 베를 짜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잊혀진 정신에 대한 이야기다. 강간이 없는 정신을 지니는 경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여행작가와 비디오 프로듀서로 일했던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됐다. 이 때 처음으로 필리핀 토착민의 방식과 필리핀 도시 라이프스타일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됐다. 이 차이에 몰두하면서 나는 필리핀 토착민에 대해 세상에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적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에 당신과 연구보조자 앤디가 함께 성폭력 생존자임을 고백하는 장면은 상당히 놀라웠다. 강간없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의 경험을 직접 드러내기로 한 이유는?

처음부터 강간 생존자로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정말로 내가 앤디의 어깨에 기대 격렬하게 우는 영상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그 인터뷰는 내가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나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 전부 다 말했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동시에 해방적인 경험이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가 우는 영상은 편집하기로 했다. 영화가 관객들을 감정적인 인질로 잡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끝냈을 때 쯤에는 필리핀 미디어가 매일같이 유명인이자 연쇄 강간마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우는 사진을 퍼뜨리고 있었다. 단순히 강간이 악랄하고 트라우마가 되는 범죄라는 걸 깨닫기 위해 도대체 몇 명의 울고 있는 피해자가 필요하단 말인가?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해서 피해를 사소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당신이 처음에 다큐멘터리를 구상했을 때와 실제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기까지, 그 동안 강간 문화에 대한 생각이나 인식이 바뀌었나?

나는 강간이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영화와 그걸 제작하는 우리의 여정은 나의 세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강간에는 정말로 아무런 변명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콩만한 뇌를 가진 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문화적인 생활이 가능한 인간이다. 겨우 몇 세대 전에 필리핀 코르디레라스 산맥의 본톡 지역에 사는 이고롯 족은 완벽하게 강간없는 사회를 살았다. 인간 지성의 성취로 그걸 이뤄보는 건 어떨까?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객들, 특히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로부터의 반응이 궁금하다.

다행히 우리가 받은 반응들(최소한 공개적인 것들)은 모두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고마운 증언들이었다. 거의 모든 상영에서, 특히 마닐라 주변 지역의 대학에서 항상 강간 생존자가 일어나서, 수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고, 흐느끼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나는 세상이 그런 건 줄 알았다. 강간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마초 사회로만 알았다. 당신은 우리가 틀렸다는 걸 증명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순간부터 이 새로운 지식을 전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또한 여성 뿐 만 아니라 남자들(소년들), 그리고 LGBT 커뮤니티에서도 똑같이 우리를 찾아와서 피해자나 가해자임을 고백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오랫동안 혐오하며 자주 자해를 해 왔다. 가해자들은 이 영화 덕분에 스스로 강간하지 않는 정신을 다잡을 용기를 줬다고 고백했다. 강간 생존자들은 강간 문화를 끝내기 위해 싸울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힘을 얻는 것, 그리고 인식을 바꾸는 것. 우리 영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정말 귀중한 반응들이다.

현재 다른 프로젝트를 작업 중인가?

지금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함께 성폭력 피해를 겪었을 수 있는 아티스트 또는 창조적인 작업자들을 위한 '피난 농장'을 만들려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중이다. 초기 자금만 마련된다면, 도시의 광기를 벗어난 필리핀 북쪽 어딘가에 만들 것 같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나와 친구들의 상처를 다시 열어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치료할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니 함께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영화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여성이 그의 존엄을 위협하는 어떤 종류의 폭력으로부터도 안전한 사회가 있을까?" 현재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강간 없는 정신, 강간 없는 사회는 여전히 가능한가?

강간 없는 정신은 완전히 가능하다(super possible). 내가 이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한 때 강간 심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주류 잡지가 우리 세대에게 하는 말을 믿었다. "평범한 남자는 언제나 섹스를 원하고 절대로 나체의 여자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과거의 파트너들이 너무 지쳤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한 번도 동의 여부를 묻지 않았는데, 왜냐면 난 그들이 "언제나 섹스를 원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끔찍하게 틀렸다. 현재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강간 없는 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의식이 있고, 명확하게 표현된 동의가 가장 중요하다.

강간 없는 사회는 우리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하는 제도들을 해체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불가능하다. 젠더 불평등, 봉건주의, 탐욕스러운 상업주의와 자본가들 모두 포함이다. 강요된 '노동 수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이것은 수많은 가정 내 강간의 간접적인 원인이 됐다. 아내가 이주노동자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난 뒤 수많은 아버지들이 딸을 강간했다. 모두 전통적인 본톡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것이 아마 그들이 강간 없는 사회를 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강간과의 전쟁은 길고 어렵다. 강간은 문화적이고 제도적이기 때문이다. 강간 심리를 바꾸는 데에 다큐멘터리로 충분할지 모르지만, 강간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

* 전체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다면 Habi Collective Media에 이메일(habi.collective@gmail.com)로 요청할 수 있다. 단, 영문으로 요청 가능.

2018.06.29 14:32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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