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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본다: 1. 루머의 루머의 루머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아래 글에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 대한 약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는 정말 많이 변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말을 덧붙이는 일이 줄었고 대신 ‘그럴 수도 있겠지.’하는 일이 늘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데 별 망설임이 없어졌다. 조금 부끄럽지만 수 년만에 간지러운 가사가 붙은 사랑 노래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추가 된 것 하나.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이하 루머X3)>를 보며 깨달았는데 나는 더 이상 십대 청소년에게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한다. 어떤 이야기든간에 이제 내가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어쨌든 ‘어른’ 쪽이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타이틀. 넷플릭스 제공

<루머X3>는 자살한 고등학생 헤나의 이야기다. 헤나는 죽기 전, 자살을 하게 된 이유를 13개의 테이프에 녹음하고 그 테이프의 등장 인물들에게 테이프를 순서대로 듣고 다음 차례에게 넘길 것을 요청한다. 지금 이 테이프를 듣고 있는 건 11번째 순서인 클레이다. 헤나를 좋아했고 늘 가까이 있었지만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던 소년. 이야기는 클레이가 테이프를 듣는 현재와 테이프 속 헤나가 이야기하는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보는 동안 내가 감정이입을 하는 쪽이 누구였냐면, 그건 바로 클레이의 엄마다. 

세상에. 그녀가 13개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총 시간을 헤아려본다면 누군가는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 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뻔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헤나나 클레이보다 그녀의 부모들을 더 걱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 대부분의 일에서 내가 ‘책임있는 쪽’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냐고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원망할 자격이 여전히 내게 있는 것일까. 글쎄,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차라리 이런 일들을 일어나게 만든 사람(이거나 최소한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중 한 명이고 그러므로 내겐 이걸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내가 이제 와서 헤나나 클레이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고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볼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건 모순이자 기만 아닐까. 나도 그 시절을 겪어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런 일을 모두 겪은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지옥일지 꽤 알지만 말이다. 내가 동일시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그 아이들을 보호하고 도울 책임이 있었던 부모나 선생들 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사실 <루머X3>가 특별히 부모 캐릭터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거나 부모들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루머X3>의 전 에피소드와 제작진들이 심리학자, 상담사 등의 전문가들과 함께 해당 시리즈의 내용을 이야기하며 만든 일종의 인터뷰 다큐프로그램인 <루머의 루머의 루머 그리고 진실>이 꽤 훌륭한 부모용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가 ‘롤모델’이라고 여겨질만한 부모를 등장시키지 않으며 부모들의 시선에서 이 일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대부분 무력하고 혼란스럽다. 그리고 거의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한 마디로 부모된 입장에서 보기에는 아주 괴로운 작품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킬 수 있을까?
알 수 있을까?

클레이의 부모들이 등장하는 몇몇 장면들은 특히 인상적이다. 클레이의 엄마는 헤나의 죽음에 클레이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네가 조금이라도 상처 입는다면 어떻게든 돕겠다고 한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클레이는 거절한다. 그리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얘기한다. 생각할수록 마음 아픈 장면인데, 정말 그렇지 않은가. 어떤 식으로든 아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모로서 내가 정말로 도움이 되는 어떤 일을 해 줄 수 있을까. 아이가 학교에서 지옥을 겪을 때, 나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머릿 속에 연기가 가득찬 것 같다. 클레이의 엄마가 클레이를 도울 수 있을까? 헤나의 부모들이 헤나를 도울 수 있었을까? 아니, 아이가 그런 일을 나에게 털어놓기로 결심할 정도로 내가 믿을 만한 부모가 그리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이가 겪고 있을 참담함이나 불행을 내가 눈치챌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대체 내가 어쩌자고 엄마가 됐나 싶다. 내가 아이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 이 아이에게 무한책임이 있는데 정말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아이를 지킬 수 있긴 한걸까. 회의적이다.

클레이를 두고 그의 부모가 나누는 대화에서는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계속해서 수수께끼같은 질문들을 던지는 클레이를 보며 클레이의 엄마는 혹시나 자신의 아들이 헤나를 죽음으로 몰고가게 한 가해학생이 아닐지 의심을 하는데 클레이의 아빠는 그 이야기를 단칼에 자르며 절대 그럴리 없다고, 클레이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부모의 그런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클레이 아빠의 태도는 어떤 면에서는 아주 위험해 보인다. 내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건 무슨 얘기인지. 뒤집어 말해보면 ‘그럴 만한’ 아이들은 따로 있고 어쨌든 그게 내 자식은 아니라는건데 양육자로서 가장 경계해야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에 대해 ‘절대’라는 말을 붙여서는 안 된다. 클레이 아빠의 경우야 운이 좋았지만 다른 가해학생들의 부모를 보라. 그들 역시 자신의 아이가 학내에서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운동을 잘 하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친구가 많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부모가 자식에 대해 무언가를 그렇게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 수 있는 걸까. 역시 회의적이다.

타인이 될 거라는 사실

당연하게도 <루머X3>는 이런 의문들에 마침표를 찍어주지 않는다. 저스틴의 엄마를 제외하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모두 썩 괜찮은 이들이다. 적어도 최악의 부모라고 비난할만한 이들은 없다. 모두들 아이를 아끼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만큼 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도 없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클레이는 사소하지만 중대한 변화를 보이는데 만약 내가 비슷한 또래거나 혹은 아이를 낳기 전이라면 클레이처럼 되고 싶다거나 클레이같은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어떤 부모 캐릭터도 가이드라인으로 삼기엔 역부족이다.

그 덕분에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래도록 이 질문들에 매달려 있게 되었다. 아이에게 정말로 위태로운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가 누군가에게 위태로운 일이 일어나게 했다면 혹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시작점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아이를 모른다는 것. 내가 아이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우선 그것부터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동안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엄마와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는데 그 시기를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다. 아이와 내가 꼭 한 몸인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비슷하다. 나는 아이의 세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자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관장하는 사람이다. 내가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나는 아이가 오늘 몇 시에 깨서몇 시에 잠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울었었는지, 어떤 그림책을 제일 좋아했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 고작해야 2,3년 정도일 것이다. 모든 부모와 자식은 그런 시절을 보내지만 결국 우리는 점점 더 완전한 타인이 되어갈 것이다. 점점 더 서로에 대해 모르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문장들의 의미를, 무게를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의 내게는 정말로 중요한 말이 될 것 같다는 예감에 오늘도 이 말들을 입 안에서 데굴데굴 굴려본다. 내가 아이와 타인이 될 거라는 사실을 인지만 할 수 있어도 꽤 괜찮은 부모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2017.11.23 17:27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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