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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연대기 (上) : '뚱뚱함'으로 내게 남겨진 상흔

솜솜

어느 날, “OO 언니도 이렇게 살 빼면 예쁜데.. 안 뚱뚱해요ㅠㅠ” 라는 내용과 함께 포토샵으로 뚱뚱한 여성 연예인의 턱을 갸름하게 수정한 사진을 보았다. ‘지금 이대로도 당당해서 멋지다’ 라는 말과 ‘살 빼면 예쁜 얼굴’ 이라는 말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몇 번에 걸쳐 삭제되는 뚱뚱한 사람의 ‘지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날 밤, 샤워를 하기 전, 거울에 내 몸을 비춰보았다.

문득 어떤 완성된 형태의 신체를 향해 가는 길목, 과정으로서만 존재하는 뚱뚱한 내가 아닌 매 분 매 초 존재하는 내 몸의 인생에 대해 어떤 것이든 써서 남기기로 했다.

유년기

나의 9살 겨울방학,

왕성한 식욕과 엄마의 적극적인 간식 제공으로 10kg 이상이 한꺼번에 불었다. 아빠는 지금의 내 몸을 걱정할 때마다 당시의 엄마를 탓하곤 하는데 맞벌이였음에도 육아와 교육은 대개 할머니와 엄마의 몫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이후로도 나는 과체중-중, 고도비만을 넘나들며 10대 이후 지금까지 70 ~ 130 킬로그램 사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내 신체에 대한 혐오감은 한꺼번에 살이 불었던 9살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초등 저학년, 옆자리의 남자 아이는 나의 신체를 끊임없이 놀렸다. 당시 나는 표준체중과 저체중 사이를 오가는 흔한 여자애였다. 그 애는 나와 등이 닿으면 토 하는 시늉을 했고 나의 얼굴과 신체를 비웃었다. 이 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해 엄마가 학교를 방문하기도 했고 아빠는 내게 혹시 모를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싸움을 가르치기도 했다. 울면서 아빠의 손바닥에 주먹을 날리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자주 나곤 한다. 초등 4학년 전학을 가면서 이전 학교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는데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크게 바뀐 나의 신체는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나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키와 체격이 큰 편이고 특히 엉덩이와 허벅지가 많이 발달했으며 살도 잘 붙었다. 초등 6학년 때는 뒷자리에 앉은 남자애들이 내가 일어서서 책을 읽거나 발표를 할 때마다 일부러 엉덩이를 보며 크게 놀라는 액션을 취하거나 소리를 질렀고 '말궁뎅이' '돼지년' 등의 단어로 나를 괴롭혔다. 일부러 엉덩이 근처에 얼굴을 가까이 대거나 내 뒤에 서서 나도 모르게 나를 우스갯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1년 가까이 나의 특정 신체부위에 가해진 심한 괴롭힘에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둔부를 가리지 않는 짧은 상의는 잘 입지 못했다.

'어이쿠'

선생님이나 목욕탕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은 나를 보며 '어이쿠' 하며 질색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단체로 놀러갔다가 어쩔 수 없이 노상에서 주변 기물로 대충 몸을 가리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을 때 가슴에 살집이 있던 나의 몸을 '어이쿠' 소리와 함께 웃으며 훑던 어떤 중년남성의 눈을 잊을 수 없다. 미용실에 가면 무겁다고 놀리기도 했고 '찌찌도 크다' 며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내 가슴을 누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제외되거나 체중으로 이목을 받는 게 두려워 일부러 그 이목을 내가 먼저 이끄는 것으로 대책을 강구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웃기는 애', '성격 좋은 애', '덩치처럼 둥글둥글한 애', '힘 세고 도움되는 애' 가 되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9살 이전에도 나의 외양을 병균처럼 취급하던 사람은 있었지만 9살 겨울방학 이후 나의 삶은 더욱 위태로웠다. 언제나 벼랑 양 끝에 걸린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디서나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가정하고 행동했으며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소아비만은 성인비만이 되었고 끊임없이 다른 몸을 상상하면서 살다 보니 제 3의 눈이 이마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내게 세상에 대한 다른 필터가 생긴 것이다.

몸과 마음에 남은 상흔

뚱뚱한 몸은 숨기기 힘들었고 상대의 눈빛이, 행동이, 말이 끊임없이 나를 재단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며 괴로워해야 했다. 뚱뚱하다는 것은 놀림 받아서 괴로울 때 당장 분리할 수 없는 성질이었다. 감량을 위해 뚱뚱한 몸으로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내내 툭툭 날아오는 돌들을 피할 수 없었다.

언제나 내 엉덩이와 가슴을 보며 킥킥대던 눈빛 때문에 상체를 숙이고 다니게 되었고 허리까지 오는 상의도 입기 힘들었다. 나를 보는 '눈' 을 의식하게 되자 사람이 많은 곳은 지옥처럼 변했다. 특히 밝고, 예쁜 사람이 많고, 세련되고 젊은 이미지를 풍기는 곳은 가장 괴로운 곳이 되었다. 백화점, 옷가게, 신발 가게, 예쁜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내게는 모두 도전해야 할 산이 되었다.

도전, 긴장

그 곳에 도착하기 위해 타야 하는 대중교통부터 난관이었다. 사춘기를 무던히 보낸 편이지만 신체에 관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교복 사이즈는 한정되어 있었다. 더 큰 치마가 없다고 해서 허리춤을 옷핀으로 꿰고 다녔다. '눈' 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만원버스는 지옥 입구 같았다. 타고 가면서 '아무도 내게 신경쓰지 않는다' 를 주문처럼 되뇌었으나 여의치 않거나 뒤에 남자라도 서는 날에는 다섯 정거장도 못 가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땀이 많이 나는 편인데 이렇게 피해망상에 휩싸여 긴장상태가 극에 이르게 되면 땀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났다. 그럼 그게 또 창피해서 도저히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을 수가 없어 도피하곤 했다. 도대체 왜 그러냐며 의아해하는 주변인들에게 이런 복잡한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다르지만 내가 20대 초일 즈음에도 '혼자 밥 먹는 사람' 에 대한 편견이 조금 남아 있었다. 더욱이 뚱뚱한 몸은 식욕의 이미지와 직결되어 있어서 사람들과 함께 밥 먹는 것도 고역이었고 혼자 먹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은 더욱 그러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혼자 먹는 것에 지나치게 공격적인 패배감을 갖는 것은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저에 어떤 것이 자리잡고 있는지 옛날의 나는 아마 조금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뷔페에 가면 혼자 요리사들이나 홀 직원들 눈치를 보며 횟수를 조절하곤 한다. 스스로도 어이없지만 제어가 잘 안된다.

나는 초등학생 때 학교나 학원 남자애들에게 장기간 놀림 당한 기억 때문에 남자가 너무도 불편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은 20대 후반임에도 어린애만도 못한 수준으로 나를 멸시했고 운동하는 곳에서 마주치는 남자 중학생들은 내게 '년' 소리를 붙여가며 내 신체를 조롱했다. 대중교통은 물론 엘리베이터같이 좁은 공간에 젊은 또래 남성이 탑승하거나 내 뒤에 서게 되면 1초가 1분처럼 흘렀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뒤에서 나를 훑어보며 킥킥대고 욕하고 내린 뒤에 내 얘기를 할 것이라는 망상에 시달리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악의는 커녕 아무런 생각도 없었을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멋대로 전개되는 나의 머릿속과 그에 반응하는 땀샘과 호흡은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셀 수 없는 경험들이 남성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남성과 친구가 되기가 힘들었다. 성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나를 '여자의 몸' 으로서 먼저 재단하고 비웃고 있을 것이라는 망상 때문이었다. 온,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행해지는 뚱뚱한 여성에 대한 성적 매력 재단과 힐난들은 여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나는 땀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비슷한 체격인데 땀이 적은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다. 운동할 때는 빗줄기처럼 내리는 땀을 보며 희열을 느끼기엔 좋았으나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쉽게 땀이 났고 특히 얼굴과 두피에 주룩주룩 흘렀다. 조금만 더워지면 등줄기와 허벅지 뒤로 흐르는 땀이 느껴지고 겨울에도 몸이 따뜻해지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청결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항상 땀냄새가 나지 않을까 고민하고 수시로 씻고 향기에 관심을 쏟았다. 동행하는 사람이 덥냐고 묻거나 땀을 지적하면 쥐구멍에 숨고 싶어졌다.

공간을 왜곡하는 심상마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큰 방은 내 몸에 달라붙는 비닐처럼 느껴졌고 앞에 서 있는 사람과의 거리가 제멋대로 늘었다 줄었다 하거나 내 얼굴이 점점 커져 방을 꽉 채웠다가 터지는 상상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공간 곳곳에 눈이 달려 웅성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지 더위를 잘 타는 신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당황하고, 망상에 휩싸이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광장처럼 트인 곳에서 약속을 잡으면 너무 무서웠다. 사방팔방이 시선이었다. 꾸미는 것도 두려웠다. 더 튀면 더 쳐다보고 욕하는 것 같았다. 때로 내게 옷차림은 더운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꾸미느냐 튀느냐가 관건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나 대개 시선을 끄는 자석이 되지는 않을까 고민했다. 집에서 화장할 때부터 긴장하곤 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해 있고 그게 부정적인 것이리라는 자의식 과잉과 피해망상은 도저히 내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문처럼 아니라고 되뇌어도 적용되는 속도는 거북이처럼 느렸다.

illustration by 솜솜

중학교 1학년 여름, 첫 생리를 시작했고 이 생리는 나의 ‘여성성’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 적이 있다. 나의 신체는 항상 재단당했으며 여성으로서 신체적 매력 부족에 대해 아쉬움을 들어야 했다. 내게 직접 하는 말이 아니어도 많은 미디어가 나와 같은 여성에게 그런 메세지를 던지고 있었으며 혹은, 페티쉬로 설명되었다. 일을 하다가 이유없이 손님에게 욕을 먹을 때도, 놀림을 받을 때도 나의 신체는 '년'과 함께 종종 성적인 뉘앙스로 비웃음을 당했다. 그래서인지 생리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생리가 나의 여성성을 확인하는 절차인 것 마냥 생각했다.나는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남들은 대개 귀찮아 하는 생리를 뿌듯해 했고 생리혈은 내게 '여자' 임을 한 달에 한 번씩 알려주는 알림같은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끈끈한 연결에서 졸업했고 지금 생리는 단순한 신체적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피해망상이 온전히 내 탓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 사건도 종종 있었다.

그 날 밤

아주 바쁜 시기가 있었다. 저녁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병원에서 자고 오후에 다시 집에 들렀다 출근해야 했었다. 그 날도 그랬다. 끝나고 땀에 절은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유난히 맥주를 사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수퍼 앞을 지나치는데 젊은 남자 둘이 맥주를 사 들고 나오고 있었다. 둘은 천천히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안주는 필요 없냐?"
"안 먹어. 없어도 돼."

그러자 안주가 필요없냐고 물은 남자가 바깥 진열대에 놓인 과자를 가리키며

"이런 거 없어도 되나? 이것도 안 먹어?"
"안 먹는다니까, 안 먹어."
"그래? 그럼 이건?"
"안 먹어. 됐어."
"그래? 그럼 저건?"

하며 그 남자는 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안 먹는다던 남자는 피식 웃으며

"야이 씨, 안 먹어. 줘도 안 먹어."

라고 대답했고 둘은 웃으며 걸어갔다.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 하나가 바짝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모욕감도 모욕감이지만 너무 무서웠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젊은 남자 둘이 나를 가리키며 먹네마네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걸 듣고 화가 먼저 나기보다는 무서움이 앞서는 시간대였다.

당시 심신이 무척 지쳐 있어서 더욱 그랬겠지만 나는 두려움이 앞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용기를 내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집에 당도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어떻게 샤워를 하고 병원에 도착했는지 중간 과정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자려고 누워도 심장이 두근대고 울컥울컥 화가 나서 잠들 수가 없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서 가슴을 퍽퍽 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하던 가게와 병원을 오가는 패턴은 한 달 정도 계속 됐다. 그 일을 당한 길을 피하고 싶었지만 집으로 가는 다른 길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날까지 자정마다 퇴근길에서 그 기억과 싸워야 했다.

어떻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가리키며 '줘도 안 먹는다' 라고 할 수 있는지, 왜 그들은 내가 반격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공격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지, 타인에게 모욕을 준 그 다음을 왜 두려워하지 않는지 등의 의문과도 싸워야 했다.

화가 나서 모르는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직접 모욕을 당하고도 그들을 죽이기는커녕 도망가기 바빴던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를 생각했다. 저들은 왜 가능하고 나는 분노를 삭이고 스스로에게 화를 쏟고 있는지, 그 간극 사이에서도 방황했다.

억울했다. 차별 받는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모욕을 당하고도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다그쳤고 생각하고 속상해하고 싸우고 울었다. 그만큼 시간을 썼고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했고 일상이 방해 받았다. 그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만이 그 비용을 치르고 있었다.

illustration by 솜솜

타인의 신체 이미지를 모욕하는 일은 어릴 때 한정이고 다들 성숙한 성인이 되어서는 그런 일이 없을까? 물론 아니다.

저 일을 겪은 후로 '욕쟁이 주인' 을 컨셉으로 잡고 장사를 했던 식당 주인을 떠올렸다. 그는 내게 욕을 할 때 '돼지같은 년' 을 빠뜨리지 않았다. 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 주면서도 내 먹성을 타박했다. 주인 아저씨의 성격과 좋은 서비스를 잘 알기에 예나 지금이나 어떤 악감정도 없지만 저런 일을 겪으면 그간 들었던 말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니 그는 누구에게나 하듯이 내게 욕을 해도 꼭 나의 뚱뚱한 몸을 욕에 끼워 넣었다.

'년'

나는 운동을 매우 좋아한다. 잘 하진 못해도 기초를 습득해 꾸준히 즐기는 데에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태권도, 검도, 에어로빅, 재즈댄스, 요가, 수영 등을 적어도 1년 이상은 최장 8~9년 정도는 끈질기게 했는데 태권도장에서 만났던 중등 남학생들의 기억이 불쑥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당시 성인반 인원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아 기초부터 그 중등생들과 함께 배웠는데 매일매일 그 남학생들은 내게 '씨발년', '돼지같은 년' 이라고 놀렸다. 뭘 해도 뒤에서 비웃었고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내게 남자애들은 거리낌없이 '년' 을 붙여 내 신체를 비웃었다. 당시 그들은 예비 중1이었던 친동생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섣불리 화를 내지도 못했다. 당시 학업에 의한 우울증도 있었고 비슷한 경험들로 이미 화를 낼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엉덩이를 보고 놀리던 동창 남자애들이 돌아온 기분이었다.

화를 낼 에너지는 없었지만 어떻게 10대 초반 남학생들이 스무 살 성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씨발년' 따위의 소리를 농담으로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만약 내 또래의 뚱뚱한 남자가 있었다면 그에게 똑같이 '돼지같은 씨발놈' 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잘은 모르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승단심사 후 내 또래 남자애 몇이 더 들어와서 같이 배웠는데 그들에겐 깍듯했으니까.

광장과 번쩍거리는 세련된 장소에서 위축되는 나에 대해 앞서 이야기했는데 옷가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바지가 예뻐서 사이즈가 있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없다며 신경질을 내는 점원에게 놀라 엄마와 황급히 발길을 돌린 후 뒤늦게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에선 어땠나. 2학년이던 당시, 학교 축제 때 우리 과는 주점을 열었다.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서 전을 부치고 있었다. 밤이 되자 술에 취한 선후배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폭력적이며 지나친 서열주의로 평이 좋지 않은 한 남자 선배가 전을 부치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나와 같이 전을 부치는 여자 선배는 학번은 다르고 나랑 동갑이었다. 남자 선배는 '둘 중 누가 고학번이냐' 물었고 여자 선배는 자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 선배는 나와 선배를 번갈아 가리키며

"학번은 얘가 위인데~ 덩치로는 네가 최고참 아니냐?"

며 낄낄댔다. 나는 그 선배의 뒤통수를 붙잡아 기름이 데워지고 있던 내 프라이팬에 얼굴을 쳐박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을 당하면 비슷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 날 밤.

'낯선 타인이 갑자기 나를 모욕하고도 걱정 없이 유유히 걸어가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고 이전에 겪었던 비슷한 일들을 한꺼번에 견인해 왔다.

몇 달이 힘들었다. 나는 그냥 길을 가다 갑자기 모욕을 당했는데 고민하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슬픈 것도, 어이가 없는 것도, 윤리적인 문제에 갈등하는 것도, 다른 이의 행동과 나의 행동을 비교하며 의아해하는 것도 모두 온전히 내 몫이었다.

*편집자주: 내 몸 연대기(中)으로 이어집니다.

 

2017.03.23 09:31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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