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

내가 헬스장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

스콰트에 열중하다가도 요가 바지에 꽂히는 시선. 꽝꽝 울리는 힙합 음악에 맞춰 신나게 크런치를 하다가도 먼 발치서 느껴지는 음습한 눈길들. 내 몸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 헬스장에서, 나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내 가슴과, 엉덩이와, 허벅지와 숨소리를 관음당한다. 그래서 묻는다: 운동할 때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나는 항상 “운동을 통해서 신체의 자유를 얻었다”는 논리로 주위에 운동을 권유한다. 학창시절 내내 마음에 안 들던 내 몸이 운동을 통해 실제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고, 설령 일이나 회식 때문에 특정 시점에 둥그런 맥주 배가 생기더라도 언제든지 노력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유동적(fluid)인 몸 이미지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살 쪘을 수도 있지.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빼지 뭐”.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서, 내 현재의 몸이 어떻든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내가 당당해도

그러나 헬스장에서는 내가 아무리 내 몸에 당당하다고 해도, 남들이 내 몸을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운동에 미쳐 있는 젊은이들이 가득한 크로스핏 박스 같은 곳은 조금 덜 하다만, 나시와 요가팬츠를 입는 순간 아저씨가 가득한 헬스장 저 건너편의 누구는 여성으로서의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타인이기 전에 여성이며, 그 때문에 그들이 씹어먹기 좋게 접시에 올려진다.

나름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친한 친구에게 옆에서 운동하던 남성이 과도한 시선을 보냈고, 땀을 뻘뻘 흘리며 뒤를 돌아보니 그 남성이 발기해 있었고, 수치심과 불쾌함에 뒤덮여 황급히 집에 돌아갔다는 일화를 얘기한 적이 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원래 그렇게 쉽게 발기 안 하는데, 네가 착각한 것 같아.”

우리는 ‘시선의 물리적 비환원성’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시선의 권력, 즉 쳐다 보는 자의 권위와 우월한 지위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이런 화두가 던져졌을 때 제마다의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경험들이 일종의 보편타당한 지위를 획득한다. 이를 ‘논리적’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확실하고 실재하는 수많은, 중대한 경험들은 가해자의 편의상 없는 걸로 치자는 얘기에 불과하다.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을 입든 타인에 대한 과잉의 시선을 던질 자유가 누가 있을까. 휠체어를 탄 사람은 시각적 주목도를 끄는 것이 분명함에도 우리가 예의바른 외면 또는 무심함의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뚫어지게 쳐다보면 그 사람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여성은 얼마나 보여지는 대상으로 취급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기에 운동을 하면서도 시선강간을 당한다는 말인가. “예뻐서, 붙는 옷을 입어서, 가슴이 커서, 민망한 자세를 해서, 엉덩이가 커서, 색기 있게 생겨서, 전 여자친구를 닮아서…그래서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는 남성중심적, 이기적 폭력이 얼마나 저질인지. 나의 성적 대상화는 당신이 아디다스에서 산 검은색 레깅스와 운동복을 입고 둔부 근육 훈련을 위해 건조하게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도중에, 나의 의지와 전혀 관계 없이 일어난다.

“민망한” 자세를 한 내 탓이 아니다. 객관적인 타인이어야 할 당신에게 주관적 성적 상상을 제멋대로 투영했음에도 아무 죄의식 없는 헬스장의 추악한 그들이 문제다. 나는 운동을 사랑하지만, 눈을 흘기는 남성이 가득한 헬스장은 결코 사랑할 수 없다. 

2017.01.26 16:49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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